정복수 할머니, 효 잔치서 일침
정치인들 모습 드러냈다 역정 들어
"사죄 없는 아베 美 연설에 격노"
“나라 팔아 먹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2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에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매년 가정의 달인 5월이 되면 나눔의 집과 일본군위안부역사관, 국제평화인권센터 등이 할머니들의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마련한 ‘효 잔치’가 개최된다. 그런데 올해는 정복수(사진) 할머니의 상수(上壽ㆍ100세) 축하연도 함께 열려 의미를 더한 것이다.
하지만 덕담이 오가는 대신 따끔한 질책이 정 할머니에게서 나왔다. 위안부의 역사를 증언해줄 할머니들이 한 분씩 타계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전향적 태도는 나오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배경이었다. 실제로 이날 행사장에서 정 할머니의 환한 미소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침 일찍부터 나눔의 집 1층 거실 의자 주변을 지팡이를 짚고 배회하던 정 할머니는 낯선 취재진들이 다가와 안부를 물으려 할 때마다 지팡이를 휘저으며 “사진 찍으러 온 거야?”라며 핀잔을 쏟았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일본의 사과를 누구보다 바라던 분이었는데, 최근 초기 치매 증상이 나타나 낯선 사람이 접근하려 하면 종종 화를 내시곤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정 할머니는 그나마 매주 봉사활동 오는 학생들은 낯이 익는지 손을 잡으며 짧은 담소를 나누었다.
정 할머니는 1916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16세 때 동남아시아 남양군도(미크로네시아섬)로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 광복 후 고국에 돌아왔지만 가정을 꾸리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2년 전 나눔의 집으로 이사를 온 이후 봉사자들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행사가 무르익을 즈음 정치인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자 정 할머니의 표정은 다시 굳어졌다. 정치인들이 정 할머니의 가슴에 카네이션 꽃을 달기 위해 다가가자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며 “나라 팔아먹지 않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며 역정을 냈다. 남경필 경기지사를 비롯해 효 잔치를 찾은 정치인들은 정 할머니의 호된 충고에 “일본에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 상ㆍ하원 연설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를 회피했다는 소식에 할머니들이 많이 속상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53명이며, 이중 10명이 나눔의 집에 거주하고 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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