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규격 임의 변경 후 계약은 잘못
효력정지 등 가처분신청 인용 결정
공사 중단에 FIFA 인증도 어려워
市, 대회 앞두고 국제 망신 자초
법원 결정 무시 공사 강행 비판도
29억원짜리 광주하계유버시아드(U)대회 축구훈련장 인조잔디 개보수 공사 입찰을 둘러싸고 특혜 의혹(1일자 16면)이 일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광주시와 낙찰업체 사이에 체결된 인조잔디 납품 계약의 모든 효력을 정지시켰다. 애초 시방서와 다르게 인조잔디의 구매 규격을 멋대로 바꾼 뒤 낙찰업체와 계약을 체결해 다른 입찰참가자들의 계약 체결 기회를 부당하게 제한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의 계약 무효 결정으로 당장 인조잔디 설치 공사가 중단되면서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이 요구했던 FIFA 2Star 인증 구장 확보도 쉽지 않게 돼 시가 국제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광주지법 민사21부(부장 이창한)는 U대회 축구장(6곳) 인조잔디 공사 입찰에서 탈락한 업체가 광주시를 상대로 낸 계약효력정지 등 가처분 신청에서 인용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시는 입찰공고와 시방서를 통해 구매 규격의 제품(인조잔디)에 대한 FIFA 랩(Labㆍ연구실) 테스트 시험성적서를 계약 체결 전에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도 이를 제출하지 못한 낙찰자 A사와 계약 체결을 강행해 다른 입찰참가자들의 계약체결 기회를 부당하게 제한했다”며 “이 같은 입찰 및 계약과정의 중대한 하자를 A사 또한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이므로 계약은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A사가 계약 체결 전 시방서에 기재된 인조잔디의 기본구조(잔디 길이 55㎜ 이상+규사+충진재(SEBS칩 ㎡ 당 11㎏)에 맞는 제품의 랩 테스트 시험성적서가 아닌 다른 규격의 제품에 대한 랩 테스트 시험성적서를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시는 A사가 계약 체결 전에 랩 테스트 시험성적서를 내지 못하면 후순위 입찰참가자들의 제출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A사와 계약을 했다”며 “이 같은 행위는 입찰공고 규정을 위반해 A사에게 혜택을 주고 다른 입찰참가자들로부터는 계약 체결의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시가 ‘인조잔디의 기본구조는 FIFA 2Star 필드테스트(인증)에 필요할 경우 발주청과 협의 조정 가능’이라는 시방서의 문구를 근거로 계약체결 단계에서부터 구매 대상 물건을 다른 제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허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낙찰자가 결정된 후 당사자 사이의 협의를 통해 구매 대상 물건을 임의로 변경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해당 경매절차는 구매 대상 물건과 그 단가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납품할 제품의 구조변경은 인조잔디의 설치 과정에서 필드 테스트의 인증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는 이번 가처분 결정에 대해 가처분집행정지 신청을 내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의 계약 효력 정지 이후에도 일부 구장에선 인조잔디 설치 공사가 버젓이 진행됐던 것으로 드러나 시가 법원 결정도 무시한 채 공사를 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는 대회 준비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A사가 FIFA 2Star 랩 테스트 시험성적서와 필드 테스트 규격 기준 적합을 통과한 증명서도 제출하지 않은 채 공사를 하고 있는데도 이를 묵인해왔다. 이번 입찰에 참여했던 업체의 한 관계자는 “광주시가 A사에게 특혜를 주려고 작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느냐”며 “법원 결정도 무시하고 이렇게 막가파식 행정을 펼쳐도 되는 건지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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