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앙서 10km 떨어진 오지, 이어지는 여진에 공포의 나날
"이렇게 처참히 무너지다니" 망연, 보건소마저 파괴… 신음만 가득
“께 거르네, 께 거르네….(어쩔 수 없지)”
대지진 발생 후 엿새가 지난 1일 네팔 고르카 지역의 피남마을 주민들은 폭삭 주저앉은 집터에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앉아 있었다. 텅 빈 시선으로 간혹 저 멀리 ‘영혼의 산’이라 불리는 마나슬루산(해발 8,163m)을 바라볼 뿐 우는 것조차 힘겨운 모습이었다. 피남은 진앙인 고르카에서도 10㎞를 더 들어가야 하는 산골 오지인 탓에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비슈노 바하두르 타파(43)씨 집은 흙벽이 완전히 무너져 잔해만 남았다. ‘그네를 타는 것처럼 흔들렸던’ 지진이 지나가자 그는 안방이 있던 자리에 임시 거처를 짓기 위해 나무로 다시 뼈대를 세우고 있었다. 타파씨는 “조상 대대로 살던 집이 무너졌다. 복구를 하고 싶지만 지붕을 덮을 슬레이트가 없어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 비나 타파(35)씨는 “남은 식량으로는 길어야 나흘 정도밖에 버티지 못할 것 같다”며 “42명 대가족이 어떻게 살아 나갈지 방법이 없다”고 울먹였다. 이웃인 시터 타파(40ㆍ여)씨는 “식량이 건물 잔해에 묻혀버렸고, 30분 거리에 있는 계곡물마저 오염돼 식수도 고갈됐다”고 말했다.
재난의 공포는 아이들 얼굴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사거르(13)군은 “집에서 자고 있는데 땅이 흔들려 너무 무서웠다. 친구들이 어떻게 됐는지 몰라 걱정된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진은 현지 시간으로 낮 12시쯤 발생했다. 당시 주민 3,000여명 중 대다수는 밭에서 일을 하던 중이어서 다행히 매몰 사고 피해자는 적었다. 그러나 흙과 돌 만으로 세워진 집들은 지진에 매우 취약했다. 그 결과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려 밖에서 쪽잠을 자며 버티는 형편이다. 게다가 마을 유일의 보건소마저 파괴돼 부상자 100여명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재앙은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참혹한 현장을 접했던 고르카 용병에게도 깊은 절망을 안겼다. 이 지역 출신 고르카 용병인 바하두르 타파 머거르(46)씨는 인도 뭄바이에서 근무하다 참사 소식을 듣고 군장을 멘 채 한걸음에 달려 왔다. 머거르씨는 “지반이 불안정해 도저히 재건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고르카 전사들의 고향이 이처럼 무참하게 파괴된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피남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네팔 정부는 이 지역에 천막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수천을 보냈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도 162가구를 대상으로 방수천과 담요 162개, 라면 2,400여개를 지원했다. 굿네이버스 긴급구호팀 노재옥 과장은 “투미, 라푸 등 완전히 고립된 지역에도 헬기나 도보로 물자를 공급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네팔 대지진 참사 닷새 째인 30일 ‘골든 타임(72시간)’을 훨씬 넘긴 뒤에도 기적의 생환 소식이 이어졌다. 네팔과 미국 구조팀은 카트만두 외곽 게스트 하우스 건물 잔해 밑에 깔려 있던 15세 소년 펨바 타망을 발견, 밤샘 작업 끝에 이날 오전 구조하는데 성공했다. 타망은 지난 120시간 동안 갖고 있던 식용 버터 두 캔과 빗물에 젖은 옷에서 수분을 보충하며 연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몇 시간 뒤인 이날 오후에는 또 다른 호텔 잔해에서 이 호텔 여성 조리사로 일하던 크리슈나 데비 카드카(23)가 구조됐다. 카드카는 그러나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매우 심각한 상태며 군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날에는 카트만두 교외 박타푸르의 한 광장 건물 잔해에 깔려 있던 11세 소녀를 매몰 90여 시간 만에 구조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28일에는 리시 카날(28)이 붕괴된 아파트에서 한쪽 다리가 절단될 정도의 큰 부상을 입고도 물과 음식 없이 버티다 82시간 만에 구조되기도 했다.
▲네팔 지진 피해 후원
굿네이버스 후원전화: (02)6717-4000
홈페이지: www.gni.kr
계좌번호: 농협 069-01-272544
강주형기자 cubie@hk.co.kr
피남(네팔)=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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