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자산이 뒷돈 거래를 통해 부실기업에 투자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제 검찰에 따르면 일본계 SBI그룹 계열 국내 투자사 대표인 윤모(41)씨는 국내 5개 기업에 900억 원대의 투자를 결정해주는 대가로 투자 브로커 김모(44)씨로부터 3억9,000만 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윤씨의 뒷돈투자 사건엔 자신이 대표를 겸임해온 투자사 SBI프라이빗에쿼티도 포함됐는데, 그 회사가 운용한 사모투자펀드(PEF)엔 국민연금이 1,800억 원을 출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증시 주변에선 투자사들이 브로커 등과 짜고 기업 내부정보나 뒷돈을 매개로 불법 투자에 나서는 일이 드물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일은 투자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가장 안정적으로 운용돼야 할 국민연금이 불법적 협잡이 난무하는 저질 투자사에 맡겨져 결과적으로 연금자산에 손실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연금자산 관리시스템 전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국민연금 자산은 가입자인 국민이 노후 연금지급을 기대하고 납입한 보험료를 모은 것이다. 대부분 수익을 내기 위해 장ㆍ단기 투자자산으로 운용되는데 지난해 말 현재 규모가 최근 코스피 시가총액 1,300조 원의 3분의 1이 훨씬 넘는 약 470조 원에 달한다. 그 중 안정적 자산운용을 위한 포트폴리오 규정 등에 따라 국내외 장기 채권에 약 60%, 국내외 주식에 약 30%가 투자된다. 나머지 10% 내외는 대체투자라고 해서 보다 높은 수익률을 겨냥해 채권ㆍ주식 이외의 고위험ㆍ고수익 자산에 투자되는데, 이번에 문제가 된 사모펀드 투자 역시 대체투자에 해당한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막대한 자산의 운용을 외부 투자기관에 위탁하는 과정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외부에 운용을 위탁하는 자산은 전체 운용자산의 약 35%인 165조 원 정도다. 국내외 200개 이상의 투자기관에 배분되는데, 위탁 수수료로 외부 투자기관에 지급되는 돈만 연간 5,000억 원 이상이다. 위탁운용사 선정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기금본부 실장 2명, 외부 전문가 4명 등 7명으로 구성되는 선정위원회가 한다. 그러나 선정위는 운용제안서에 기반한 정량평가 외에, 평가의 50%를 차지하는 구술심사는 현장 문답은 물론, 심사회의록조차 남기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미 국민연금 운용본부를 공사로 독립하는 방안 등을 포함한 기금 관리ㆍ운용체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이번 사건으로 국민연금 자산의 외부 위탁운용의 허점이 드러난 만큼, 책임자 문책은 물론 차제에 위탁 운용사 선정 절차 및 사후 평가 시스템도 크게 손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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