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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대디와 아이 "희망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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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대디와 아이 "희망 찾았어요"

입력
2015.05.0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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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아버지 가정 보호시설, 서울 도선동 선재누리 가보니…

최저생계비 130% 이하 차상위층, 공과금만 납부하면 3년 거주 가능

아이에겐 자존감ㆍ활력 되찾아 주고 아빠에겐 미래 희망 설계 도와

아버지 홀로 자녀를 키우는 '싱글대디'를 위한 보호시설 선재누리에서 한 직원이 학생들에게 독서실 이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선재누리 제공
아버지 홀로 자녀를 키우는 '싱글대디'를 위한 보호시설 선재누리에서 한 직원이 학생들에게 독서실 이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선재누리 제공

“절망뿐이었던 제게도 목표가 생겼습니다. 하루하루 감사할 따름이죠.”

서울 왕십리의 한 마트에서 생선을 판매하는 정인우(49ㆍ가명)씨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요즘 힘든 줄을 모른다. 생활고 때문에 원하는 공부를 포기한 채 취직만을 생각했던 고교 2학년 딸이 대학 진학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는 모습이 대견해서다.

정씨는 12년 전 이혼 후 지하 단칸방에서 딸과 함께 생활했으나 형편이 어려워져 딸을 지인 집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딸과 떨어져 생활한 것이 1년 남짓. 그러던 부녀에게 지난해 12월 오붓한 보금자리가 생겼다.

정씨 부녀를 한 울타리로 묶어 준 곳은 서울 성동구 도선동에 위치한 ‘선재누리’다. 2007년 인천 ‘아담채’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싱글대디(아버지 홀로 자녀를 키우는 가정)’ 보호시설이다. 아파트 형식의 6층 건물에는 19세대가 입주해 있는데 공과금만 납부하면 15평 남짓한 공간에서 길게는 3년 동안 거주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정씨는 비싼 월세 비용이 들지 않아 100여만원에 불과한 월 수입을 쪼개 저축까지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생전 처음 딸을 학원에도 보낼 수 있었는데 이제야 아빠 노릇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며 “돈을 모아 가게를 낼 꿈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한부모가족 중 정씨와 같은 싱글대디 비유율은 23%(지난해 기준). 적지 않은 비중이지만 정작 한부모가족 지원시설 51곳 가운데 47곳(92%)은 싱글맘을 위한 시설이다. 선재누리는 싱글대디 가정의 열악한 현실에 착안해 서울시와 여성가족부, 대한불교진각종이 힘을 모아 설립했다.

싱글대디라고 해서 아무나 선재누리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 이하인 차상위계층 중 자립 의지가 확고한 사람이어야 한다. 경제적 재기가 가능할만큼 신체도 건강해야 한다. 박양명 선재누리 사무국장은 “단순히 형편이 어려운 싱글대디 가정을 위한 시설이 아니어서 재기를 향한 노력과 계획을 가장 중시한다”고 설명했다.

선재누리는 바닥까지 떨어졌던 아이들의 자존감과 활력도 되찾아 줬다. 동생과 함께 이 곳에 들어온 김민혁(12ㆍ가명)군은 요즘 드럼 배우기에 푹 빠졌다. 민혁이의 드럼 사랑을 눈치 챈 선재누리 직원들이 인근 청소년 수련관에 부탁해 드럼 교습을 주선했다. 민혁이는 “전에는 방과 후 집에서 동생과 단둘이 있어야 했지만 지금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기쁨을 알게 돼 더 이상 외롭지 않다”며 환하게 웃었다. 민혁이의 아버지 김남현(38ㆍ가명)씨는 밝아진 아이들의 표정이 고맙기만 하다. 그는 2년 전 몽골인 부인과 이혼한 뒤 혼자 새벽 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우유배달을 하며 월 100여 만원을 벌었지만 두 자녀를 키우기에는 힘이 부쳤다. 보육원 출신인 김씨는 혼자 지내야 했던 어릴 적 기억 때문에 아이들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월세 50만원을 내면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빠듯했다. 그는 “예전에 내던 월세만큼 저축을 하고 있다”며 “돈을 모아 작은 치킨 집을 차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가정의 안정을 되찾은 싱글대디들은 주변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고 편의점 야간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는 함민구(50ㆍ가명)씨는 중ㆍ고교를 다니는 두 자녀를 둬 빠듯한 생활임에도 선재누리 직원들에게 햄버거를 돌리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함씨는 “빚과 생활고에 찌들었던 지난 시절에는 세상을 불신했지만 요즘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감사하다”며 “빨리 자립해 나보다 어려운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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