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후반 유럽 산업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했다. 자욱한 석탄 연기 속에 노동자들이 북적거렸던 런던 빈민가는 늘 시궁창 악취가 진동했고 질병이 창궐했다. 아이들까지 나서 온 가족이 하루 건너 밤새 공장에서 일해도 끼니조차 잇기 어려울 정도의 저임금에 시달렸다. 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이윤 추구가 방임됐던 당시 체제가 노동자들의 삶을 극한까지 몰아갔던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고전적 비판서인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이런 사회상황을 배경으로 나왔다.
▦ 자본론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내재적 모순 때문에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가설이다. 그걸 뒷받침 하는 논리 가운데 하나가 ‘공황론’이다. 자본은 오직 이윤 확대만을 위해 움직인다. 그러기 위해 임금을 최대한 깎고, 기계를 들여 일자리까지 줄이다 보니 노동자들은 점점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노동자들이야말로 상품의 소비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엔 공장에 상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소비자가 없어 팔리지 않는 공황을 낳는다는 게 골자다.
▦ 자본주의는 붕괴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제기한 자본주의의 모순은 오늘날의 경제문제를 분석하는 핵심 관점으로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요즘 자주 언급되는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다.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한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등이 주장했다. 경제가 성숙단계에 이르면 임금 정체나 채무 부담 때문에 소비가 줄고 투자까지 위축시켜 만성적 수요부진이 나타나는데, 그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불황의 원인이라는 얘기다.
▦ 경제 성숙단계, 즉 자본의 이윤 추구가 절정에 이른 시점에 자본으로부터 오히려 노동자가 소외되고, 수요 부진을 낳는다는 기본 얼개가 마르크스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미국 경제의 회복세조차 다시 불확실해진 가운데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전망을 통해 “대부분 경제 선진국들은 장기 성장정체를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새삼 구조적 장기침체를 경고했다. 심각한 우리의 내수 부진 역시 따지고 보면 경제 성숙단계의 가계소득 정체 및 부채 부담 같은 구조적 문제여서 걱정이 크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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