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정화운동 앞장 선 동산 큰스님
성철, 지효, 지유, 능가 스님 등 굵직한 후학 배출
"견디고 참고 기다리는 감인대(堪忍待) 정신 강조"

1953년 4월 전국 선사(禪寺)에 의분에 복받친 격문이 돌았다. 어렵사리 해방을 맞았지만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결혼ㆍ육식하는 대처승이 늘고, 이들이 승단을 장악한 터였다.
“나라가 해방이 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아직도 왜색 사판승들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의 비구승들은 더욱 더 단합하고 분발하여 1,600년간 지켜온 우리 불교의 청정계맥을 바로 세우고 흐트러진 승풍(僧風)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 글은 전국 비구승들의 마음을 울렸고, 대처승들은 일제히 한 스님을 ‘격문사건’의 배후로 지목했다. 부산 범어사 금어선원 수좌였던 동산 스님이다. 이 일로 추방되다시피 범어사를 떠난 그는 당시 문교부장관 등의 조치로 복귀했고, 이듬해 8월 효봉, 적음, 금요, 청담 스님 등과 함께 불교정화운동의 깃발을 올려 선봉에서 평생 헌신했다.
동산 큰스님의 열반 50주기(5월 11일)를 맞아 범어사가 분주하다. 30일 부산 금정산 자락의 범어사에서 만난 수불 스님은 “동산 큰스님은 조계종의 정체성을 확립한 분으로 열반 50년이 흘렀지만 가르침이 유효하다”며 “간화선(화두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선) 수행을 중심에 두고 평생 정진하며 후학을 제도한 가르침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범어사는 다음달 11일 봉행하는 추모다례재를 비롯해 일종의 세미나인 교학대회, 사진전 개최, 사진집 발간 등을 한다. 지난해 주지로 선출된 수불 스님은 동산 큰스님의 증손상좌다.

동산 큰스님은 24세에 범어사에서 3ㆍ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용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성철, 지효, 지유, 능가, 고산 스님 등 한국 불교계의 굵직한 후학들을 양성한 선지식이기도 하다. 수불 스님은 “어려운 시절 많은 이가 가르침을 청했고, 큰스님은 ‘닭이 천이면 봉이 한 마리’라며 모든 이를 품었다”며 “말씀 청하는 곳이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무리 멀어도 법문을 하러 가셨다”고 말했다. 그는 93년 11월 입적한 성철 스님이 그 해 5월 문득 범어사를 찾아와 홀로 동산 큰스님의 탑 앞에서 삼배를 하던 일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동산 큰스님은 평소 “무슨 종교든지 일체 중생의 고원을 낙원으로 인도해 현 세계를 광명세계로 전화함이 원리”라며 사회에 대한 관심과 기여를 촉구했다. 오늘날 되새길 가르침으로 율학승가대학원장인 수진 스님은 동산 큰스님의 감인대(堪忍待) 정신을 꼽았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려움과 혼란에 처한 21세기 특히 한국 사회에 감인대 정신이 절실합니다.”
부산=김혜영기자 shine@hk.co.kr
▶ 동산 큰 스님 어록
“천상(天上)에 일월(日月)이요 암야(暗夜)에 명등(明燈)인 불타의 교단이 세상에 출현하야 국가에 복전(福田)되고 민중에 안목(眼目)되야 불일(佛日)이 증휘(增輝)하는 법륜(法輪)이 상전(常轉)하기를 바라마지 않노라.”
“무슨 종교든지 일체 중생의 고원(苦源)을 낙원으로 인도하여 현 세계를 광명세계로 전화(轉化)함이 원리일 것이다. 그러면 고원과 낙원을 추궁(推窮)치 아니하며 아니 된다.”
“부처님 원리는 일체가 유심(唯心)이다. 이 유심의 근본은 불(佛)도 아니요, 중생도 아니요, 물(物)도 아니요, 심(心)도 아니다.”
“성품을 보면 이것이 부처요, 성품을 보지 못하면 중생이니라.”
만일 중생성을 여의고 따로 불성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중생성이 곧 불성인 것이다. 성품 밖에 불(佛)이 없고, 불(佛)이 곧 이 성품이니 …”
“일체사(一切事)는 불타정법(佛陀正法)에 따르기만 하면 옳게 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사부중(四部衆)은 위법망구(爲法忘軀)의 본연대도(本然大道)에 나서라.”
“복을 구하는 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단순하고 피상적인 방법으로 복을 구하는 것은 너무 허망한 일이다. 불교는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자기가 지은 인과의 업보로 설명하니, 범부(凡夫)들이 불전(佛前)에 한두 번 불공이나 하고 시주나 조금 한다고 그 죄가 없어지고 대뜸 복을 받겠는가? 우리가 복을 구하더라도 복을 받을 행동을 해야 되는 법이니, 실질적으로 복을 받을 신앙생활과 수행을 쌓아야 되겠다.”
“자성(自性)은 진실하여 인(因)도 아니고 과(果)도 아니며, 법(法)은 곧 마음의 뜻이다. 자심(自心)이 보리(菩提)이며 자심이 열반(涅槃)이니 만일 마음 밖에 부처와 보리를 가히 얻을 수 있다고 하면 옳지 못한 것이니, 그렇다면 부처와 보리가 다 어느 곳에 있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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