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법안이 지난 2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유보되었다.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은 담뱃갑에 혐오그림을 넣는 것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안 통과를 막았다. 그림이 너무 혐오스럽다는 것이다. 흡연으로 인해 매년 우리 국민 5만 8,000여명이 사망한다. 전체 사망의 20%가 흡연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1위인 암 사망의 30%는 흡연이 원인이다.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넣는 것은 이런 혐오스러운 현실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노력이다. 담배의 해로움을 제대로 알려 국민의 건강권과 진정한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넣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문자 경고 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경고그림은 시각적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흡연자가 금연을 더 많이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금연을 결심하고 결국 흡연율을 떨어뜨릴 것으로 확신한다.
캐나다는 이미 2001년에 세계 최초로 경고그림을 도입했는데, 이로 인해 흡연율이 획기적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이런 효과는 청소년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담뱃갑은 그 자체가 중요한 광고수단이다. 담뱃갑의 현란한 색과 디자인은 청소년을 유혹해서 담배를 피우도록 하고, 담배를 끊은 흡연자가 다시 담배를 집어 들도록 유혹한다. 경고그림은 청소년에게 담배가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을 방지해 담뱃갑이 더 이상 담배를 광고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해준다.
경고그림 도입은 담배규제의 국제적 표준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180개국이 비준한 담배규제기본협약은 담뱃갑 앞뒤 면의 50% 이상에 경고그림을 도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2015년 현재 77개국이 그림경고를 도입했다. 유럽연합의 모든 회원국은 내년부터 경고그림을 도입한다. 경고그림은 선진국에서만 도입한 것이 아니다. 칠레, 우루과이 등 중남미와 태국,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아시아 국가도 경고그림을 도입했다. 최근 이를 도입하는 나라가 크게 늘고 있으나 우려하는 어떤 부작용도 보고된 바가 없다.
담배회사는 여러 이유를 들어 경고그림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청소년을 새로운 흡연자로 유인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결국 담배소비가 줄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외국 담배회사는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경고그림 도입을 방해해왔다. 이들은 경고그림이 담배소비를 줄이는데 효과가 없으며 비흡연자와 흡연자 모두에게 과도한 혐오감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담배소비에 영향이 없다면 굳이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경고그림이 아니라 담배 자체가 건강을 해치는 더 혐오스런 물건이다. 담배는 담배회사가 만든 목적대로 소비하면 사용자의 절반을 죽이는 아주 예외적인 상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담배에 대한 규제 역시 예외적으로 강력하다. 담배만을 규제하기 위해 별도의 국제조약이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도입하는 것은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아니라 국민에게 담배의 해로움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한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정부는 담배가격을 2,000원 인상하면서 이는 세수확충이 아니라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국민에게 이를 설득하기 위해 올해 안에 담뱃갑에 그림경고를 도입하고 편의점의 담배광고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약속이 거짓이 아니라면 정부와 여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조홍준 울산의대 교수ㆍ대한금연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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