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현장의 부실 앙금이 여간해서는 털어지질 않네요. 찰싹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게 무슨 유령처럼 지긋지긋합니다.”
금주 들어 올해 1분기 실적을 일제히 공시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들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매출이 지난해보다 늘고 영업이익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곳도 있지만, 자신 있게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해외건설 현장의 오랜 부실 때문에 연말까지 좋은 실적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급격히 달아오른 분양시장 덕분에 올해 예정 공급 물량을 두 배 가까이 늘리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했지만 실상 부동산 호황의 결실은 1분기 실적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고, 무엇보다 해외 현장에서 끊임없이 추가손실 비용이 발생해 건설사들의 발목을 놔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미분양 아파트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영업이익이 ‘완전 박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반응도 있습니다.
매출이 전년 1분기보다 5.8% 증가하고 5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갔지만,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46.5%나 감소한 대우건설 관계자는 “국내건설에서 벌어들인 걸 해외현장에서 까먹으니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나버렸다”고 말합니다. 3, 4년 전 국내 건설사들끼리 해외현장에서 치렀던 저가수주 경쟁의 여파가 추가손실금액으로 남아 고스란히 실적을 파먹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중동에선 자국산 시멘트를 일정량 이상 사용해야 하는 등 규제가 심해요. 그런데 이걸 따르다 보면 우리 건설사들의 눈높이에 맞는 시공을 할 수가 없어요. 콘크리트 배합을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하고 그러다 공기가 지연되면 인건비와 공사비가 추가로 들고 악순환이 따로 없죠.”
업계의 다른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아직 한국 건설사들에겐 아랍에미리트의 RRE(루와이스 정유시설 프로젝트)현장은 무덤이나 다름 없어요. 2013년 1분기에만 국내 건설사들이 8,000억원 정도를 추가손실금으로 집어넣었을 정도로 심각한 현장이죠. 아마도 건설사들이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겠지만 이번 1분기에도 이곳의 적잖은 손실금이 실적에 반영되었을 겁니다.”
1분기 매출이 전년보다 19.8%가 늘고 영업이익도 6.9%가 증가한 현대건설의 성적표는 얼핏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역시 해외현장이 큰 골칫거리입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1분기 해외건설 원가율이 91.4%로 전년 동기(91.1%)보다 늘었습니다. 공기가 지연되고 인건비가 뛰다 보니 경상비용 등이 늘었던 것이죠. 사우디아라비아 마덴 플랜트 현장에서 이번 분기에 400억원 정도 추가손실 비용을 반영했어요. 이래저래 업계가 어려운 상황입니다.”고 말합니다.
영업이익(200억원)과 순이익(14억원)이 흑자 전환한 GS건설의 1분기 실적은 사내에서 “만족하는 수준이었다”라고 하지만, 증권사들은 “기대수준 이하였다”는 평을 내놨는데요. “대형사들이 보통 10조원 매출에 3,000억원 영업이익을 거둬야 대략 만족할 정도지만, 올해 이 정도를 달성할 곳은 없을 것입니다. 주택경기가 살아났지만 본격적으로 아파트 착공이 이뤄지고 돈이 돌아야 실적에 반영이 되는데 그러려면 연말까지는 기다려야 해요. 그나마 미분양이 줄어서 주택부문 대손충당금을 많이 넣지 않게 된 게 다행입니다”는 게 한 관계자의 말입니다.
이처럼 해외건설현장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지 않고, 주택활황의 영향력이 만족스럽지 않은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대형 건설사들의 실적개선도 느림보 걸음일 수밖에 없는데요. 요즘 들어 건설사들이 호텔, 면세점, 스포츠서비스업 등 다양한 ‘외도’를 서슴지 않는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이해됩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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