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스포츠 산업화 속 스포츠와 디자인의 결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 경기라는 상품을 어떻게 포장해 내놓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무궁무진해집니다. 총 10회에 걸친 '스포츠, 디자인을 입다' 기획을 통해 한국 프로스포츠의 가치를 높인 사례를 조명합니다.
“치킨집, 건설사, 백화점, 증권사, 보험사, 병원까지… 보고는 있지만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죠”
어릴 적부터 프로야구를 즐겨 봤다는 김민석(31)씨에겐 한가지 큰 불만이 있었다. 바로 경기 중계 때마다 수도 없이 비춰지는 포수 뒤편의 광고판. 투수의 투구가 종료될 때까지 중계 화면에 노출되는 만큼, 야구를 시청하는 동안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무를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광고가‘가장 잘 팔리는’ 영역인 만큼 구단의 입장에선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공간인 데 반해 팬들에게는 안 볼 수는 없고, 계속 보자니 시각적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 야구팬들도 불만, 투수들도 불만
야구장에서의 포수 뒤편 광고 영역은 좌우 외야 타워와 함께 가장 비싼 자리로 꼽힌다. 잠실야구장을 기준으로 최대 30개의 광고가 팔리고 있고, 개당 연간 2억 7,000만원 가량의 광고료가 책정되는 영역이다. 때문에 구단들은 그 좁은 영역을 쪼개고 쪼개 많은 광고들을 유치해 왔고, 이는 구단에 적잖은 수익을 안기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스포츠가 점차 산업화 되는 추세에 따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도 경기에 지장을 최소화 하는 선에서 경기장 내 광고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KBO 관계자는 “포수 뒤 영역에 대한 광고 규제는 거의 없는 편이다. LED 광고가 들어갈 경우, 투수의 투구가 종료될 때와 인플레이 시 광고 교체가 금지되고, 야구공의 색과 같은 흰색 바탕의 광고만 제한되는 정도”라고 밝혔다.
문제는 난잡한 광고로 인한 경기 몰입 방해. 포수 뒤편의 광고는 중계를 시청하는 야구팬뿐만 아니라 육안으로 바라봐야 하는 투수들의 시야에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 한화 이글스 투수 출신 송진우(49) KBS N 해설위원은 “광고 수익을 내기 가장 좋은 자리이기에 구단마다 많은 광고를 배치하려 했던 건 사실”이라면서 “때에 따라선 경기력에 지장을 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 면에선 광고판이 깔끔한 메이저리그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더 심플하게’…팬심 읽은 구단들
팬과 선수들의 목소리가 들렸을까. 구단들은 저마다 경기장 신축 및 리모델링 과정에서 포수 뒤편 광고판을 재정비했다. 구단마다 고정식 광고판이나 롤링 광고판, LED 광고판 등 다양한 형식의 광고판을 도입하면서 ‘간소화’를 추구했다. 구단들은 테트리스 퍼즐처럼 배치했던 과거의 광고판들을 대신해 팬과 선수들에게 친화적인 깔끔한 광고판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구단은 2014 시즌부터 KIA 챔피언스필드로 홈 구장을 옮긴 KIA 타이거즈다. KIA는 지난해부터 시행한 ‘고품격 Look & Feel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포수 뒤편 영역에 챔피언스필드 로고와 함께 모기업 KIA의 대표 모델 차량 광고만을 집어넣었다.
KIA 관계자는 “선수와 관중의 편의를 우선시 한 디자인이었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 이 관계자는 “선수들이 경기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팬들이 편하게 야구를 관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우선순위로 뒀다”면서 “시행 후부터 팬들과 선수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특히 “수익성 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수 십 개의 광고가 들어가던 영역에 한 개의 광고만을 넣었지만, 디자인이 가미되고 집중도가 올라가면서 광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 구단들도 포수 뒤편 광고판을 깔끔히 정리했다. 넥센 히어로즈가 홈 구장으로 쓰는 목동구장과 삼성 라이온즈의 홈 구장인 대구구장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구단들은 광고판 재정비를 통해 심미적 효과를 함께 누렸다. 송진우 위원은 “지금의 광고판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경기하기 용이한 형태로 변했다”며 구단들의 노력을 칭찬했다.
● 상식을 뛰어넘은 기발한 아이디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고민은 비단 야구장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스포츠가 산업화되며 국내 프로스포츠 전반에서 뻔한 공간에 많은 광고를 집어넣는 방식을 탈피한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프로농구 부산 kt는 2009년부터 자사 브랜드를 타투로 제작해 선수들의 어깨에 붙이고 경기에 출전했다. 농구 경기 특성상 관중의 중계 카메라와 관중의 시선이 선수들의 팔에 집중되는 것을 간파한 아이디어였다.
비슷한 시기 배구 코트에서는 ‘엉덩이 광고’를 내놨다.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 등 여자배구 구단들은 경기 중 방송 카메라와 남성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반바지의 뒷면에 광고를 집어 넣었다.
유니폼과 A보드만을 광고 영역으로 활용했던 프로축구단도 새로운 광고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은 이번 시즌부터 관중석 2층을 뒤덮은 통천 영역에 광고를 집어넣었고, K리그 챌린지 서울이랜드FC는 국내에 처음 도입한 컨테이너석 외벽에 광고를 넣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케팅 담당자들의 고민엔 끝이 없다. 한 K리그 구단 관계자는 “팀은 기본적으로 팬들의 팀이 돼야지 광고주의 팀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광고 효과를 높이면서 팬들의 경기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프로야구단 관계자 역시 “기업 친화적이던 구단의 마인드가 점차 선수와 팬 친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선수들이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그런 경기를 팬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구단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최주호 인턴기자 (서강대 정치외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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