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통령처럼 무개차 타고 의장대 사열… 여기는 남쪽의 청와대

입력
2015.04.30 13:43
0 0

대통령 별장 인기 시들해지자

철마다 꽃 축제·예술행사 열고

호반 100㎞코스는 마라톤대회

역대 대통령 이름 딴 6개 산책길도

관람객 다시 늘어 작년 83만명

“대통령이 호수에 낚싯대를 던지면 군인들이 잠수해서 바늘에 큰 물고기를 물려놓았다니까.” “욕실 수도꼭지는 전부 순금이래.”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를 두고 한 때 지역주민들 사이에 나돌던 얘기다. 5공 청문회 당시에는 “핵심 공사를 맡은 인부들이 하나 둘씩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물론 모두 유언비어다.

청남대에 관한 과장된 오해는 그 존재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던 데서 연유한다. 최고 권력자만의 공간으로 꼭꼭 숨겨놓았으니, 그 반작용으로 별의별 의혹과 추측이 난무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청남대는 더 이상 은밀한 권력의 공간이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천혜의 호반 풍경과 생태, 휴양,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국민쉼터로 탈바꿈했다. 개방된 지 10여년 만에 권력의 냄새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를 싱싱한 자연과 은은한 사람 냄새가 가득 채우고 있다.

25일 충북 청주 청남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헬기장에서 봄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잔디가 잘 보존된 이곳에서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 주민과 함께 청남대 개방 행사를 가졌다.
25일 충북 청주 청남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헬기장에서 봄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잔디가 잘 보존된 이곳에서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 주민과 함께 청남대 개방 행사를 가졌다.

“정자는 보통 4각, 6각, 8각으로 짓는데 이 정자는 왜 5각형일까요?”

햇살이 가득 쏟아진 지난 25일 오후 청남대 오각정을 찾은 관람객들은 관광안내원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안내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무궁화 모양을 본 딴 겁니다. 나라꽃을 상징하는 만큼 대통령들도 이곳에선 항상 신을 벗고 올라 정갈한 마음으로 사색을 즐겼다고 합니다.” 오각정에 올라 내부 구조를 살피던 이정순(58ㆍ경기 수원시)씨는 “대통령 별장답게 흥미로운 사연을 간직한 시설이 꽤 많다. 한데 대부분은 서민적이고 수수해서 친근감이 든다”고 했다.

진달래와 철쭉, 목련이 활짝 핀 정원과 숲길은 봄 향기에 취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두 자녀의 손을 잡고 걷던 김진석(42ㆍ대전시)씨는 “갖가지 야생화와 꽃나무가 가득한 청남대는 가족 나들이에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이날 청남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1만여 명의 상춘객이 몰렸다.

충북 청주시 대청호변에 자리한 청남대가 개방된 것은 2003년 4월이다.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건설된 지 꼭 20년 만이었다. 청남대는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사용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권위주의의 상징인 청남대를 주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선거 공약을 지키면서 굳게 닫혔던 문이 활짝 열렸다.

청남대가 들어선 뒤 각종 규제에 시달리던 지역에서는 쌍수를 들고 반겼다. 침체한 지역경기가 금세 나아지리란 기대감이 팽배했다.

다양한 대통령체험 코너가 있는 대통령기념관에서 한 방문객이 무개차에 올라 의장대사열 체험을 하고 있다.
다양한 대통령체험 코너가 있는 대통령기념관에서 한 방문객이 무개차에 올라 의장대사열 체험을 하고 있다.

하지만 청남대가 주민의 품으로 돌아와 제 역할을 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통령 별장이 전격 개방됐다는 소식에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관람객이 왕창 몰렸다. 개방 이듬해인 2004년 1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찾았다. 그러나 이후 관람객이 푹푹 줄더니 2009년에는 50만명 선까지 떨어졌다. 5년간 평균 13%씩 관광객이 줄었다. 지역 상인들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대통령 별장이란 상징성과 단순한 호기심만으론 더 이상 관광객의 관심을 끌 수 없다고 판단한 청남대관리사업소는 다양한 변신에 나선다. 먼저 문화예술을 접목했다. 청남대 안에서 패션쇼, 음악회, 연극, 댄스 대회 등 각종 공연과 이벤트를 마련했다. 야생화가 지천인 점을 활용해 봄(4,5월)에는 영춘제, 가을(10,11월)에는 국화축제를 열었다. 호반의 아름다운 코스는 100km를 달리는 울트라마라톤대회와 대청호마라톤대회 장소로 활용했다. 이렇게 연중 테마가 있는 축제와 체육ㆍ예술행사가 이어지면서 청남대는 활력이 넘치고 문화예술이 숨쉬는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산책로를 손질하거나 새로 닦아 대통령의 사연을 담은‘대통령 길’은 바로 청남대의 명물로 떴다.

총 13.5km에 달하는 대통령 길은 6개로 나뉘고 또 서로 이어진다. 대통령 길에는 이름을 붙인 각 대통령의 사연이 서려 있다. 청남대를 처음 만들 때 생긴 본관~오각정 산책로는 전두환 대통령길로 명명했다. 노태우 대통령길은 그가 평소 산책을 즐겼던 양어장 주변에, 김영삼 대통령길은 김 대통령이 매일 새벽 조깅을 하던 곳에 조성했다.

김대중 대통령길은 대청호반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초가정과 전망대를 산의 능선으로 연결하는 코스다. 초가정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인 전남 하의도에서 가져온 농기구와 어구가 전시돼있다. 앞이 탁 트인 초가정에 앉으면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호수 속에 가라앉아 다도해를 보는 듯 하다. 여기 앉아 사색을 즐긴 김 대통령은 고향 하의도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노무현 대통령길은 평소 노대통령처럼 소탈하고 평범하게 산아래 샛길을 이어 만들었다. 가장 최근에 조성된 이명박 대통령길은 체험 공간이 다양해 요즘 가장 뜨는 코스다. 출렁다리, 사랑의 터널, 피크닉장, 행운의 계단 등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키워주기 위한 대통령리더십길도 만들었다. 이 길은 대통령기념관과 통하도록 설계됐다.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승용차 출입을 허용(사전 예약으로 하루 500대까지만 가능)하고, 매주 토요일에는 밤 9시까지 개장 시간을 연장했다. 이런 노력으로 청남대 관람객은 2010년부터 다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83만여명이 다녀갔다.

올해는 대통령을 테마로 한 기념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더욱 풍성해졌다.

이달 중순쯤 개관하는 대통령기념관이 핵심 볼거리다. 양어장 인근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건립된 대통령기념관은 청와대를 그대로 본 땄다. 청와대 본관의 60%크기다. ‘남쪽의 청와대’를 구현한 이곳엔 대통령체험실이 있다.

무개차에 올라 의장대를 사열하거나 외국 정상과의 회담을 체험하고 기념촬영하는 코너가 눈에 띈다. 대국민 연설, 국무회의 주재 체험장도 있다. 대통령 역사기록화 전시실에는 역대 대통령 10명의 생애와 업적을 그림으로 담은 초대형 기록화(300호)를 만날 수 있다. 이 기념관이 개관하면 기존의 대통령역사문화관은 대통령기념관 별관으로 명칭이 바뀐다. 이곳엔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물, 물품, 외국 원수로부터 받은 선물 등 1,500여점의 자료가 가득하다.

기념관 건립에 맞춰 역대 대통령의 동상도 새로 만들어 곳곳에 배치했다. 동상 키는 230cm. 대통령 동상은 2009년 조성한 대통령광장에 실물 크기로 제작해 설치했는데, 크기가 너무 작고 조잡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작품성을 고려해 새로 만들었다. 서울 광화문의 세종대왕상을 만든 조각가 김영원씨가 제작을 맡았다.

이재덕 청남대관리사업소장은 “기념관, 역사기록화, 동상 등 역대 대통령 기록사업이 마무리됨에 따라 청남대가 대통령 테마파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며 “앞으로 친숙하고 흥미로운 대통령 스토리텔링을 많이 발굴해 모두에게 편하게 다가서는 진정한 국민관광지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청주= 글ㆍ사진 한덕동기자 dd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