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달의 시작을 앞두고 다시 공동체의 통장을 비웠다. 늘 그렇듯이 강의와 세미나를 이끄는 학자들에게 사례비를 입금하고 월세와 전기세, 복사기 임대료 따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봄이 되며 공동체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바람에 학자들에게 보내는 금액도 더욱 초라해졌다.

사람들은 인문학 열풍이라고들 하는데 열풍의 한 가운데 있는 인문학 공동체는 봄의 한 복판에서도 추위를 탄다. 사람이 많은 공부 모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게 더 많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다가 갈수록 사람이 줄어드는 모임도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마르크스의 ‘자본론’, 지젝의 ‘헤겔 레스토랑’, 스피노자 ‘에티카’, 헤겔 ‘정신현상학’, 들뢰즈 ‘니체와 철학’,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주역’, ‘논어집주’, ‘맹자집주’ 등은 한번 강독에 적어도 반년, 웬만하면 1, 2년이 걸린다. 산스크리트어나 희랍어,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문을 익히는 것도 쉽지 않다. 학문이 직업이 아닌 이가 1년이나 2년 동안이나 난해한 책을 한 줄, 한 줄 읽거나 별 쓸모도 없는 언어를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이런 와중에도 얼마 전, 철학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강의를 또 시작했다. 세계 철학사의 주요 장면을 2, 3개의 키워드로 쉽게 설명하는 입문 강의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 시작하는 본격 강의에 앞선 첫 시간, 한 철학자를 모셔 기조 강의를 부탁했다. 철학은 왜 공부하며, 어떻게 공부할 것이냐가 주제였다. 그는 몇 해 전 ‘교수신문’에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청년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쓴 학자다.

“얼마 전 대학원에 진학해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며 조언을 부탁하셨지요? 제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웬만하면 다른 길을 택해보라는 것입니다. 평생 밥벌이도 제대로 하기 힘든 공부를 위해 과연 십 수 년의 고된 수련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출신이 아니면서, 국내에서 철학을 공부하겠다는 것은 졸업 후에 정규직 취직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찌어찌 해서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인문학 하기가 보람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학계는 다른 어떤 분야 못지않게 신자유주의적인 체제로 철저히 재편되고 있는 중입니다. 단기 수익성을 높여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라. 이를 위해 교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1년에 많게는 10여 편에서 적게는 3, 4편에 이르는 등재지 논문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인문학 하기란 밥벌이도 못하면서 논문 작성 기계의 삶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간곡히 권하거니와 학문의 세계에 발일 디디지 말기 바랍니다. 인문학, 특히 철학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강의를 듣는 이들이 직업 철학자의 길을 걷겠다는 사람이 아니었음인가. 그는 수강생들에게 학문, 특히 인문학의 각 분야에서 깊이 있고 독창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 스스로가 탐구하고 모색해야 하리라는 것이었다. 강의는 뜨거웠고 참여자들의 표정도 밝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학자의 길은 아니라 할지라도 공부의 길이 쉽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일과를 마치고 남들은 집으로 가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 헐레벌떡 공동체로 달려오기를 반복하다 보면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하는 회의도 만만치 않으리라. 처음엔 마냥 반갑고 좋기만 하던 공부 동료와 이런 저런 갈등까지 생겨나게 되면 인문학이고, 철학이고 모두 그만두고 싶게 될 가능성도 있다. 사람 사는 곳 치고 유토피아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강의를 들은 사람들의 일부는 내년 이맘때 즈음에도 일과를 마치자마자 공동체로 달려오며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이어갈 것이다. 이들을 이렇게 만드는 힘이 무엇일까. 어쨌거나 이들로 인해 인문학 공동체들은 늘 가난하고 흔들리면서도, 열풍의 진원이 되고 있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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