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내조하는 건전한 □□ 가족문화를 정착한다.’
위의 □안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해군’입니다. 해군이 29일 채택한 ‘명예해군 7대 윤리지침’의 마지막 7번째 항입니다. 해군은 이날 충남 계룡대에서 정호섭 참모총장 주관으로 전체 장성과 부인 140여명이 참석한 워크숍을 열고 이같이 결의했습니다.
이미 여성 대통령까지 배출했고, 현역 여군이 무려 1만 명에 달하는 시대에 뜬금없이 ‘내조’라니 대체 무슨 말일까요? 군대 밖 사회생활에서도 부서 회식 때 이런 말이 나오면 혹자들은 성차별이라고 방방 뛸 지 모를 일입니다. 더구나 상명하복이 목숨과도 같은, 그 어느 조직보다 거친 문화에 익숙한 군대 내에서 내조라는 표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생뚱 맞아 보입니다. 심지어 ‘해군 부인들은 유달리 드센가’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올해 들어 방산비리로 구속되거나 성 관련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군인들은 대부분이 해군 소속입니다. 통영함 사건이나 골프장 캐디 성희롱, 부하 여군 대상 성폭력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떠올리시면 될 겁니다.
이에 해군은 대대적으로 내부 쇄신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호섭 총장이 총대를 메고 전국의 해군ㆍ해병대 부대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면서 군 간부들을 상대로 참회의 반성문을 쓰고 있습니다. 일련의 불미스런 사건사고에 대해 변명하지 말고 나부터 각성하자는 겁니다. 29일 열린 장군단 워크숍은 해군이 기울여온 그간의 노력을 집대성하는 ‘결정판’입니다.
그러면 왜 ‘내조’라는 말이 윤리지침에 포함된 걸까요? 바로 해군 특유의 ‘함장문화’ 때문입니다. 요즈음 해군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 받는 함장문화는 한마디로 말해 ‘상관에게 절대 복종하는 그들만의 끼리끼리 문화’입니다. 기댈 곳 없는 망망대해에서는 함장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모두가 살 수 있기에 생긴 전통입니다. 유사시에는 최강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버팀목이 되지만, 여기에 온정주의가 덧씌워질 경우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되는 이중적인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함장문화는 해군 장교들뿐만 아니라 부인들 사이에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한번 출동하면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씩 바다로 남편을 보내고 떨어져 있다 보니 같은 함정에 근무하는 남편들의 위계질서가 부인들간에도 적용됩니다. 육군에 비하면 해군의 장교 숫자는 워낙 적다 보니 서로간에 잘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소속부대가 바뀌어도 과거의 끈끈한 인연은 오래 지속된다고 합니다. 부인들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해군이 이번에 윤리지침을 만들면서 근거로 삼은 공무원행동강령, 군인복무규율, 해군규정, 참모총장지시사항 그 어디에도 ‘내조’나 ‘배우자’를 언급한 구절이 없지만 해군이 유독 이 표현을 집어넣은 이면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해군이 장교들의 부인까지 윤리지침의 대상에 포함시킬 정도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할 테니 한번만 더 믿고 지켜봐 달라는 ‘읍참마속’의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최근 논란이 거셌던 ‘김영란법’이 법 적용 대상에 가족까지 넣었다가 위헌소송을 당하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해군의 처절한 노력이 가상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쯤에서 해군의 7대 윤리지침에 담긴 다른 내용을 살펴볼까요. 다음과 같습니다.
1. 국가자산(인력ㆍ재물)을 절대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2. 금품을 수수하거나 부당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3. 공공예산을 절대 부정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4. 인사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를 일체 하지 않는다.
5. 군인으로서 품위를 위반하여 사회적 물의를 야기하지 않는다.
6.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곰곰이 뜯어봐도 모두 공자님 말씀들입니다. 부디 해군이 초심을 잃지 않고 이번의 각오와 결의를 끝까지 지켜나가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래야 해군은 물론 우리 군이 바로 서고, 등을 돌린 우리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참, 아쉽게도 이번 장성단 워크숍에 그분은 빠졌다고 합니다. 골프장 캐디에게 노래와 춤을 시킨 A중장 말이지요. 반면 상관인 A중장과 함께 라운딩을 하면서 “나처럼 엉덩이를 흔들어야지”라고 맞장구를 친 것으로 물의를 빚었던 B준장은 워크숍에 참석했다네요.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