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은 영화제가 몇 곳 있다. 스위스 로카르노국제영화제가 1순위이다. 단 한 장의 사진이 로카르노영화제에 대한 환상을 심었다. 로카르노 도심 중앙광장에서 펼쳐지는 개막작 야외상영 장면을 찍은 사진이었다. 영사기가 쏜 빛에 의해 윤곽이 은은하게 드러난 광장 주변의 고건축물이 오래도록 동공에 자국을 남겼다.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도 버킷리스트에 올라 있는 영화축제다. 스페인 최고의 피서지로 꼽히고 미식가들의 성지라고 불리는 항구 도시 산세바스티안에서 영화와 음식이 관광객들을 두고 대결을 펼친다. 눈과 혀를 자극하는 영화제라고 할까.
미국 선댄스영화제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 혹한의 지역 유타주에서 한겨울에 열리는 이 영화제는 설립자인 배우 로버트 레드퍼드의 이름만으로 설렌다(선댄스는 고전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레드퍼드가 맡았던 역할이다). 사실 선댄스영화제는 영화인들이 가기 싫은 영화제로 꼽는다. 지독한 추위 때문이다. 천막극장에서 무릎에 담요를 올려놓고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영화를 본다고 한다. ‘겨울영화제’를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든 것은 ‘인간 난로’다. 영화제 막바지 레드퍼드가 주요 영화인들과 저녁을 함께 하며 온화한 미소를 흩뿌리면 그 동안 얼어붙었던 몸이 녹아 내렸다고 한다. 세계 최고 독립영화제로 성장했으니 이젠 레드퍼드의 미소가 없어도 매년 각국 영화인들로 붐빈다.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까지는 아니어도 도시인의 마음을 흔들 만한 국내 영화제 두 곳이 몇 년 전 생겼다. 전남 순천시에서 개최 되는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5월 22~28일)와 전북 무주군에서 열리는 무주산골영화제(6월4~8일)다.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 50편 가량을 상영하는 순천만동물영화제는 극장 밖 행사가 눈길을 끈다. 순천만영화제를 반려동물과 찾고 싶은 관객들을 위해 1박2일 열차여행 상품을 마련했다. 반려동물과 제약 없이 열차를 탈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출발지는 서울 부산 광주. 열차 안에서 느끼는 해방감만으로도 반려동물 가족들이 환호할 만하다.
무주산골영화제는 자연을 앞세운다. 숲 속 야외상영관에서의 영화 상영이 대표상품이다. 반딧불이의 군무와 함께 초여름 밤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영화 관람은 무료. 야영장까지 운영하는 영화제이니 영화보다 숲의 향기에 취한다.
공교롭게도 순천만동물영화제와 무주산골영화제는 2013년 나란히 출범했고 예산도 6억원 가량으로 같다. 국내 영화제들 중 막내격인 작은 영화제이나 개성만은 확실하다. 도심의 멀티플렉스가 갑갑하기만 한 영화광들이라면 발길을 돌려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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