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동 동작샘터도서관
이주여성 만남의 장 탈바꿈


23일 오후 서울 사당동의 높은 아파트들 사이에 낮은 3층 건물인 동작샘터도서관 옥상이 소란스럽다. 놀이터로 꾸며진 옥상에서 아이들은 고무 패드 언덕을 오르내리거나 미끄럼을 타며 신나게 놀고 있다. 어머니들은 바로 옆에서 열린 벼룩시장에서 옷을 고르고 있다. 한켠에는 작은 카페도 있다. 8살 난 딸을 데리고 옥상에 온 주민 강정민(35)씨는 “아빠와 아이가 이 건물에서 열리는 가족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왔다가 옥상에서 놀곤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 건물 옥상에는 콘크리트 바닥에 덜렁 벤치 몇 개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이 건물에 입주한 동작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2014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ㆍ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의‘문화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프로젝트에 지원해 올해 2월 옥상 놀이터 ‘루프루프(roof-loop)’를 열었다. 놀이터에 있는 모든 놀이기구는 하나의 철제 파이프로 연결돼 있다. ‘이 자리에 오는 모든 이들을 하나로 잇고 싶다’는 뜻이다. 안진경 동작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옥상 공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최근 아파트 근처에 놀이공간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놀이터를 만들게 됐다”며 “다문화가정을 비롯한 여러 가족들이 연결되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옥상이 놀이터로 바뀌자 공동체의 삶도 달라졌다. 이주 여성들에게 만남의 장이 되면서 교류하고 일자리 정보도 나눌 수 있게 됐다. 몽골에서 온 뭉크자르깔(30)씨는 지난해 이 센터의 이주여성 일자리 교육 프로그램에서 바리스타 과정을 배운 뒤 놀이터 옆 카페에서 실습을 겸해 일하고 있다. 그는 “카페에 있으면 다문화가정 엄마들이 옥상으로 올라와 쉬면서 대화를 나누곤 한다”며 “전에는 교육만 받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베트남, 필리핀, 러시아, 일본 출신 분들하고 알고 지낸다. 그러다 다른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를 알게 돼 조언도 받았다”고 말했다.
루프루프가 다문화가족들을 공동체로 엮어내는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설계 때부터 건축가ㆍ문화기획자ㆍ이용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다. 놀이터를 설계한 네임리스건축의 나은중 대표는 “설계 전에 실제 사용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아이들을 위한 공간 외에 어머니들을 위해 카페와 테이블을 설치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반영했다”며 “이것이 루프루프가 관심을 끌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했다. 벼룩시장과 카페가 만들어진 게 이런 기획의 결과였고 덕분에 옥상이 문화공동체로 변신했다.
‘문화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 프로젝트는 버려진 공간들을 공동체의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연평도 해병대 내 옛 생활관은 장병과 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북카페로 바뀌었다. 매달 추천도서를 소개하며 책 읽는 마을을 만들어간다.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다시피 하던 인천 삼산동 삼산치안센터는 청소년 쉼터와 모임방이 됐다. 주민들은 이 곳에서 ‘삼산데이 마을행사’를 열어 직접 만든 미술작품 등을 전시하기도 했다. ‘문화로 행복한 공간 만들기’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https://www.kcdf.kr/)의 공모절차에 따라 서류 심사와 현장 심사를 거쳐 대상으로 선정될 경우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진흥원은 올해도 모집공고를 내고 사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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