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안 마시지만 커피 만화… 더 열심히 자료 찾고 공부할 수밖에
난 계속 진화 중… 차기작은 '돈'"
“만화는 재밌는 게 기본이지만, 얼마나 많은 독자가 볼지도 계산해야 해요. ‘식객’이나 ‘커피 한잔 할까요?’는 먹고 마시는 걸 소재로 한 만화니 누구나 보죠. 반면 (칭기즈 칸 일대기를 그린)‘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는 남자들만 보는 만화입니다. 하지만 제가 꼭 그리고 싶었던 주제라 그렸던 거죠.”
장인이라기보다는 전략가였다. 40년째 만화를 그리는 원로 작가니 자기만의 만화 철학을 강조하겠거니 생각했지만, 그의 눈은 항상 사람들의 취향과 유행을 기민하게 읽었다. 만화가 허영만은 2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첫 회고전 ‘창작의 비밀’을 열었다. 그리고 같은 날 ‘커피 한잔 할까요?’(예담)를 출간했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렸다”고 그는 말했다. 데뷔 직후부터 40년이나 인기 만화를 생산해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안주하지 않고 공부하는 태도였던 것이다.
허영만은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직후 연재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히어로 만화 ‘각시탈’로 일약 인기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번 전시에는 ‘각시탈’ 초판본 원화 149장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지금까지 내놓은 215편의 만화책도 전시돼 있다. 한국 만화 40년간의 역사가 고스란히 읽힌다.
한국 만화의 황금기였던 1980년대에는 권투만화 ‘무당거미’ 시리즈와 야구만화 ‘제7구단’ 등을 히트시켰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를 “부끄럽게도 많이 그렸다”며 후회했다. 대여점이 만화책을 찍어내는 대로 사들이던 시절이었다. “화실에 직원이 가장 많았을 때 27명이나 됐습니다. 한 달에 8권을 그렸던 적도 있어요. 그러다 이건 만화를 제대로 그리는 게 아니다 싶어서 1988년에 화실을 접고 시골로 들어갔습니다.”
1990년대 소년만화의 유행에 따라 내놓은 ‘날아라 슈퍼보드’도 사랑을 받았지만 허영만은 “연륜을 무기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만화를 그리겠다고 마음 먹고 내놓은 것이 나중에 영화화된 ‘비트’와 ‘타짜’다. 이어서 내놓은 한국 요리만화 ‘식객’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40년이나 뒤처지지 않고 트렌드를 앞서가며 성공작을 내는 이 만화가를 두고 천부적 감각을 타고났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공부밖에 답이 없다”는 원론적인 답을 이야기했다. 그는 ‘식객’을 그릴 때 음식을 실제에 가깝게 묘사하기 위해 4년이나 방방곡곡 식당을 찾아다니며 요리 사진을 모았다.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위해서는 몽골 답사를 세 번 다녀왔다. 철저한 자료 준비는 ‘각시탈’을 그릴 때부터다. 전시에 소개된 34권의 메모장에는 탈 사진, 옛 한복과 군복의 스케치, 이야기를 위한 참고 자료들이 가득하다.
이번 회고전을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기회”라 여기지만 허영만은 “계속 진화하는 사람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기작 주제도 생각해 놓았다. “먹고 마셨으니 다음은 돈입니다.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싶어요.” 허영만에게 변치 않는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 그리고 계속 변화하려는 자세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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