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싹쓸이로 흥행 1위 씁쓸
"극장 당 상영횟수 규제" 목소리
지난 28일 전국에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을 한번이라도 상영한 스크린은 1,706개다. 전국 2,281개 스크린 중 43.8%다. 이날 ‘어벤져스2’가 동원한 관객은 25만8,195명으로 일일 흥행 순위 1위에 올랐다. ‘장수상회’는 2위라고 말하기에는 초라하게 1만6,886명이 관람했다. ‘장수상회’의 스크린 점유율은 9.9%(스크린 385개)에 불과했다. “스크린을 싹쓸이했으니 ‘어벤져스2’가 압도적인 흥행 1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힐난 섞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어벤져스2’의 대규모 상영으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대형 영화 한 편의 과도한 스크린 점유로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가 설 자리를 잃고 관객들의 선택의 폭마저 좁아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봉 영화의 스크린 상한선 도입 등의 구체적인 규제를 통해 스크린 독과점의 폐해를 이 참에 근절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상영횟수로 따지면 ‘어벤져스2’의 스크린 독과점은 더욱 심각하다. 29일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어벤져스2’는 28일 하룻동안 8,682회가 상영돼 전체 상영에서 65.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상영점유율 2위에 오른 ‘분노의 질주: 더 세븐’(8.9%)의 7배다. ‘상영의 질’에도 차이가 있다. ‘어벤져스2’가 오후 8시 전후 등 주요 시간대를 독차지하면서 다른 영화들은 사실상 관객과 만날 수 없는 상영시간 배정을 받고 있다. 수도권 한 멀티플렉스 극장이 다양성영화 ‘땡큐, 대디’를 29일 오전 8시35분과 밤 12시에만 상영하는 식이다.
‘어벤져스2’의 스크린 싹쓸이에는 어떻게든 대형 영화는 피해야 한다는 영화제작사들의 학습효과도 작용했다.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는 개봉을 앞당겼고, 류승완 감독의 ‘빅매치’와 곽경택 감독의 ‘극비수사’ 등은 여름으로 개봉일을 옮겼다. ‘관객이 원하니 많이 상영한다’는 시장논리를 내세우는 극장가 관행을 감안하면 ‘어벤져스2’와의 맞대결은 백전백패라는 인식이 작용한 것이다.
영화계에서는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이제 영화산업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하고 있다. 대형 상업영화의 독식이 영화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고사시켜 결국은 관객을 내몰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1/4분기 극장 관객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줄어든 것이 위험신호 중 하나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잘 만들어진 영화를 골라보는 재미가 줄어들면서 관객의 발길이 뜸해졌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는 “취향도 일종의 습관이라 문화적 과정을 통해 길러지는 것”이라며 “(작은 영화와 큰 영화의) 공생관계를 만들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향후 5년 안에 한국영화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씨는 “한 영화가 전국 스크린의 30~40% 이내에서만 개봉하고 특정 극장에서는 반을 넘기지 않는 이중 규제를 통해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거대 자본이 주도해 온 국내 영화산업 성장주의의 한계라는 주장도 나온다. 다양성영화를 수입 배급하는 한 영화사의 대표는 “(영화 투자배급사가 멀티플렉스체인을 관계사로 두는) 수직계열화가 영화시장을 팽창시켰지만 그 부작용으로 스크린 독과점이 심해지면서 중소 영화사들이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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