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메모’를 들여다볼수록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내용의 진실성 따위가 아니다. 이름 적힌 순서의 의미, 이완구ㆍ이병기 금품 제공액수 미 기재 이유, ‘복기 장부’ 존재 가능성 등이다. 그 56자에는 많은‘다잉메시지(죽기 직전 남기는 단서)’가 숨겨져 있다. 구명 요청이 좌절되자 ‘야수의 심정’으로 실세들을 쏜 심리를 이해하는 게 실마리다.
▦ 이완구 전 총리는 지난 1년여 성완종씨를 23번 만났다. 주고받은 전화가 210여 차례다. 성씨는 육성파일에서 그에게 3,000만원을 줬다고 했다. ‘부부관계 수준’의 친분으로 보면 너무 적은 액수다. 메모에 액수를 기재하지 않은 건 총액을 계산하지 못할 정도여서가 아닐까. 성씨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도 140여 차례 통화했다. 그러나 머뭇거리면서도 금품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건넨 돈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두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차이라고 해석하면 지나친 비약인가.
▦ 메모 앞 부분에 허태열, 홍문종, 유정복을 차례로 열거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로 보인다. 성씨는 “2007년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준 7억 원으로 대선 경선을 치렀다”고 했다. 홍 의원과 유 인천시장은 2012년 대선 당시 선거지원을 책임지는 자리였다.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주기는커녕 사정으로 되돌려 준 서운함의 표시다. 유일한 비박 인사인 홍준표 경남지사가 포함된 것도 의문이다. 같은 경선자금 지원 때문으로 추측되나 다른 억하심정일 수도 있다.
▦ 돈을 건넨 여권실세 명단과 액수를 성씨가 머리에 넣고 있지는 않았을 게다. 메모는 금품을 제공한 수많은 정ㆍ관계 인사를 놓고 추린 요약본일 가능성이 많다. 별도의 복기 자료의 존재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더한 의문이 생긴다. 검찰이 대통령의 뜻을 받아 메모 쪼가리조차 없는 사면로비 수사를 할 지다. ‘정치 검찰’을 자인해 온 저간의 행태로 보면 가이드라인을 따를 가능성이 짙다. 리스트 수사는 이완구와 홍준표로 끝내고 사면 수사로 저울추를 옮길 것이다. 하지만 실체가 밝혀질 리 없고 여야간 특검 공방이 지루하게 이어지다 흐지부지되리라는 건 안 봐도 뻔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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