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산 산막이 옛길. 한국관광공사 제공
걷기 좋은 계절이다. 충북 괴산에 예쁜 길 하나 있다. 호수 끼고 돌며 숲 터널을 지나는 길이다. '산막이 옛길'이다.
이름에 얽힌 사연이 흥미롭다. 아주 오래 전 첩첩산중에 마을이 하나 있었다. 산이 막아 섰다고 해 산막이 마을이라 했다. 마을은 산 속 오지였던 터라 죄인의 유배지로 제격이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노수신(1515~1590)은 을사사화(1545년)에 휘말려 이 두메에서 한동안 유배생활 했다. 나중에 그의 10대손인 노성도가 선조의 자취를 더듬어 이곳으로 왔다가 마을을 에둘러 흐르는 달천 주변의 비경에 반했다. 그리고 아홉 경승지를 골라 '연하구곡'이라고 이름도 붙였다. 1950년대에 괴산댐이 들어서며 괴산호가 생겼다. 연하구곡이 물에 잠기고 산막이 마을과 옆 마을을 이어주던 섶다리, 돌다리도 무용지물이 됐다. 마을 사람들은 나룻배로 호수를 건너야 했다. 이것이 불편해 산비탈에 벼랑길을 냈다. 이것도 불편해지자 아예 마을을 떠났다. 사람들이 떠나자 길의 흔적도 흐릿해졌다.
산막이 옛길은 당시 위태로운 벼랑길을 2011년에 복원한 것이다. 칠성면 사은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약 4km 구간이다. 호수 끼고 도니 풍경 수려하고 나무가 무성하며 경사도 완만하다. 편도 30~40분 걸리는 거리도 걷기에 부담 없다.
사오랑 마을에서 시작하는 길은 나무데크로 잘 만들어졌다. 망세루, 호수전망대, 괴음정, 고공전망대가 차례로 나오는데 느티나무 고목 위에 만들어 놓은 괴음정과 바닥이 유리로 된 고공전망대가 인기다. 호수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짜릿함이 압권. 호수도 잘 보이고 건너편 언덕 위의 환벽정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길은 재미도 있다.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랑이굴, 옛 사람들이 비를 피하며 쉬어갔다는 여우비 바위굴, 여기에다 연리목, 정사목, '산(山)'을 닮은 뫼산바위, 스핑크스바위, 매바위, 여인의 엉덩이 닮은 나무, 물레방아…. 이름만으로도 귀 쫑긋하게 하는 것들 참 많다.
산막이 마을은 마을이라 부르기도 뭣할 만큼 작다. 마을 호숫가에는 노수신이 귀양살이 하던 적소(수월정)가 있다.
산막이 옛길이 지나는 산비탈 꼭대기 능선부로 등산로도 있다. 호수 에워싼 등잔봉(450m), 천장봉(437m), 삼성봉(550m)을 잇는 능선 길인데 풍경이 장쾌해 등산 즐기는 이들이 종종 찾는다.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편도 2~3시간 거리다.
부담 없이 걸으려면 산막이 옛길 산책로나 유람선 등을 이용한다. 사오랑 마을과 산막이 마을 사이 호수를 따라 유람선 오간다. 이거 타고 출발점으로 돌아가거나, 더 걷겠다면 온 길 되짚어 간다. 등산 겸하려면 등산로 이용해 산막이 마을까지 간 후 되돌아 나올 때 산책로나 유람선 이용한다.
김성환 기자 spam001@sporbiz.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