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선구안ㆍ컨택트 능력에 몸무게ㆍ근육 늘려 장타율도 껑충
"무겁던 방망이 가벼워졌어요"
[한국스포츠경제 함태수] 지난 8일 잠실 두산-넥센전이었다. 두산이 6-3으로 앞선 3회말 1사 1ㆍ2루에서 김재호(30ㆍ두산)가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에는 상대 두 번째 투수 김동준. 김재호는 초구 직구에 방망이를 힘차게 돌렸다. 결과는 헛스윙이었다. 시즌 들어 그가 방망이에 공을 맞히지 못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김재호의 헛스윙은 8경기, 25번째 타석에서 나왔다.
수비의 달인으로 평가 받는 김재호가 이제는 빼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두산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김재호는 28일까지 22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4푼3리, 1홈런 10타점을 기록 중이다. 장타율 4할6푼3리에 출루율도 4할4푼4리나 되며 10개 구단 9번 타자 중 단연 눈에 띄는 성적을 찍고 있다. 9할 대의 OPS는 선구안과 컨택트 능력, 눈에 띄게 좋아진 파워가 절묘하게 합쳐진 결과다.
김재호는 지난 23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상대 마무리 손승락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대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4-5로 뒤지던 9회 1사 후 마지막 타석에서 잇따라 파울 타구를 만들어내며 좌전 안타를 치고 나갔다. 두산은 이후 민병헌의 안타, 정수빈의 희생 플라이, 김현수의 역전 투런포로 경기를 뒤집었다. 김재호는 닷새 뒤 직접 해결사로 나섰다. 28일 잠실 kt전 0-0이던 3회말 상대 선발 정대현으로부터 투런포를 쏘아 올렸고, 이 한 방이 결승타가 됐다.
김재호는 기본적으로 헛스윙이 많은 타자가 아니다. 주전 유격수로 완벽히 자리매김한 지난 시즌 총 1,730개의 공을 상대했는데, 헛스윙은 58번으로 3.4%였다. 그 해 리그 평균 헛스윙 비율은 7.8%, 한화 이용규(3.3%)만이 김재호보다 비율이 낮았다. 올해는 더 좋아졌다. 이날까지 84타석에서 342개의 공을 상대한 김재호는 헛스윙이 단 3차례(0.9%)에 불과하다. 비율로 따지면 1%로 되지 않아 신기할 정도다. 10개 구단 타자 중 단연 최저 1위이다. 2~5위는 이용규(한화ㆍ3.5%) 최주환(두산ㆍ3.8%) 유한준(넥센ㆍ4.0%) 이진영(LGㆍ4.1%)이 잇고 있다.
물론 헛스윙이 적은 대신 지켜보는 공이 많은 면도 있다. 올해 타자들의 평균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은 18.1%이고, 김재호는 21.6%다. 섣불리 방망이를 내지 않는 만큼 헛스윙도 쉽게 나오지 않는 셈이다. 김재호도 시즌 초반 "유난히 헛스윙이 없다"고 묻자 "그것보다 서서 당하는 삼진이 많아 문제다. 아직 타격감이 정상은 아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날씨가 풀리고 컨디션이 회복되면서 헛스윙 없는 이 9번 타자가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잠실 LG전 멀티히트(3타수 2안타)가 신호탄이 돼 최근 11경기(12~28일)에서는 4할8푼6리의 타율로 이 기간 타율 전체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투수 입장에서는 끈질기게 커트하면서 안타를 때리고, 나쁜 공에는 좀처럼 방망이를 내지 않아 볼넷으로 걸어나가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김재호는 올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에서 한 인터뷰에서 강한 공격력을 갖춘 유격수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해 너무 단타 위주로 치니 상대 수비 시프트에 잡히더라. 변화를 줘야 한다고 느꼈다"며 "이제는 수비만 잘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보양식을 찾아 먹고 77㎏이던 몸무게를 85㎏까지 불렸다고 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투자하는 시간도 몇 배는 늘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선구안과 커트 능력이라는 장점에다 파워를 입힌 셈이다. 낮은 헛스윙 비율은 그래서 더 빛이 난다. 요즘 분위기만 놓고 보면 언제든 칠 수 있는 타자다.
"스윙을 크게 하는 기술적인 변화를 줬다. 예전에 무겁게 느껴졌던 방망이가 이제는 가볍다"고 목소리를 높인 김재호는 "시대가 요구하는 유격수가 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그는 "다른 타자들과 달리 특별한 구종을 노리고 들어가지 않는다. 변화구에 속지 않는 나름의 노하우도 생긴 것 같다"며 "시범경기 때는 장타 욕심에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몇 개의 잘 맞은 타구가 나오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 좋은 팀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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