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가격 경쟁력 본격 강화
日 수출물가 하락하고 물량은 늘어
중국 수출 실적도 한국보다 개선
엔저 국면 당분간 지속 전망 속
원·엔 환율 100엔당 800원대 하락
일본 기업들의 수출가격 인하가 본격화되고 있다. 엔저(低)를 자양분 삼아 수익 축적에 치중하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가격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엔화 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 속에 원ㆍ엔 환율은 7년 2개월 만에 100엔당 900원선 아래로 추락(원화 강세)하며 우리 기업의 수출 전선에 드리운 먹구름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일본 수출기업들의 가격 인하 공세는 올해 들어 하락폭을 키우고 있는 수출물가로 확인된다. 28일 일본은행(BOJ)과 재무성 등에 따르면 일본 수출물가(계약통화 기준)는 1~3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 내외 하락했다. 낙폭이 1% 안팎이던 지난해 3분기, 2~3% 수준이던 4분기와 비교해 하락세가 완연하다. 그간의 수출물가 하락이 주로 국제유가 하락에 기인했다면, 올해 들어서는 엔저 효과를 수출가격에 본격 반영하는 일본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유럽 자동차시장에서 닛산, 마쯔다 등이 차량 가격을 2,000~4,000유로 인하하고 전자업체 소니는 싱가포르에서 휴대폰 가격을 낮추는 등 일본 기업의 가격할인 공세가 폭넓게 감지되고 있다. 시장점유율 확대를 노린 일본 기업들의 가격 공세는 올 들어 매월 두자릿수의 수출물량 증가(전년동월 대비)로 이어지며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엔저 국면이 머지않아 끝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외화 표시 수출가격을 유지하며 엔화 환산 이익을 높이는 전략을 취해왔다”며 “그러나 지난해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완화 단행으로 엔저 흐름이 지속 또는 강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수출기업 전반에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유나 동부증권 연구원은 “전자제품, 자동차 등 우리나라와 수출경합도가 높은 부문을 중심으로 일본 기업들의 수출가격 인하가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28일 원ㆍ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전날보다 0.41%(3.73원) 떨어진 898.56원(오후3시 기준)을 기록했다. 서울 외환시장 개장 시간에 원ㆍ엔 환율이 100엔당 900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8년 2월29일(895.57원) 이후 7년 2개월 만이다. 시장에선 “엔화 약세 추세가 1~2년 지속될 것”(서대일 대우증권 수석연구원), “연말까지 원ㆍ엔 환율이 860원선까지 하락할 것”(허진욱 삼성증권 거시경제팀장)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 수출시장이 거센 엔화 약세 흐름에 쓸려나갈 조짐도 보이고 있다. 한종훈 코트라 선진시장팀 연구원은 “중국, 멕시코 등에서 엔저 효과가 나타나면서 우리 기업의 수출경쟁력 약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서 우리 기업의 디스플레이 수출은 2013년 176억달러에서 지난해 162억달러로 감소한 반면 일본 기업 수출액은 41억달러에서 47억달러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우리가 제자리걸음(연 17억달러)을 한 대(對)중국 자동차 수출 실적 역시 일본은 51억달러에서 59억달러로 개선됐다.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엔화 약세, 중국 성장세 둔화 등 대외리스크가 수출을 통해 우리 경제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4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서도 “엔화 약세의 직접적 영향으로 일본은 물론, 중국 및 유럽연합(EU) 수출 감소세가 지속되며 우리 수출의 하방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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