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발표했다. 먼저 전날 이완구 총리 사퇴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과거부터 내려온 부정과 비리, 부패척결을 해서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리스트 진실규명을 위한 특검 수용 입장을 거듭 확인하고, 과거 참여정부에서 이뤄진 고 성완종씨 두 차례 사면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 발표는 기대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성역 없는 수사로 정치개혁을 이루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로 다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의 과거 당내 경선과 대선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국민적인 의혹이 쏠려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직접적 언급 없이 비리척결을 통한 정치개혁만을 강조하는 것은 본질을 비껴간 것이다.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의 반복이라는 비판을 듣는 이유다. 이날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박 대통령 자신의 대선자금 의혹에 대해 책임 있는 언급이 있었어야 한다는 점에서 크게 아쉽다.
참여정부 시절 성 전 회장의 두 차례 특별사면을 굳이 강조한 것도 그렇다. 물론 누가 봐도 성 전 회장의 사면은 비정상적인데다, 실제로 이를 둘러싸고 온갖 설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성완종 리스트로 제기된 핵심 의혹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곁가지 사안이다. 성격상 수사로 진상을 규명하기도 쉽지 않은 사안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 문제를 적극 부각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또한 성완종 리스트로 인한 부담을 덜기 위한 의도로 읽힌다. 중남미 순방 강행군에 의한 피로 누적으로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던 박 대통령이 홍보수석의 대리 낭독을 통해서까지 입장 발표를 서두른 점도 자연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야당 측은 오늘 재ㆍ보선을 겨냥한 것이라며 “변칙적인 선거개입”이라고 발끈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의 건강악화 상황을 자세히 밝힌 것까지도 동정표를 염두에 둔 정치적 행위로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의 건강문제까지 정치공학적 해석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화법과 메시지가 상황을 정리하기는커녕 도리어 번번이 꼬일 여지를 키운다는 게 문제다. 이번 사태도 당초 정치적 계산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운 총리의 부정부패 척결 담화에서부터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를 전면적인 정치권비리수사로 돌파하겠다는 판단 역시 제대로 정국을 푸는 방안은 아닌 것 같다. 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출구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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