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다. 첫 출연영화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다. 게다가 서울에서 촬영해 대중의 이목이 쏠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이라니.
지난해 ‘어벤져스2’의 한국 배우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대중은 당황했다. 수현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유명 남자배우 김수현과 구분해 여자 수현이라고 분류될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다. 2005년 슈퍼모델로 데뷔해 드라마 ‘도망자 플랜B’와 ‘7급 공무원’에 조연으로 나온 게 전부였다.
1년이 지난 뒤 수현은 어느 충무로 스타 못지않은 유명인이 됐다. ‘어벤져스’ 시리즈에 합류한 첫 동양인 배우라는 수식과 함께 충무로 대신 할리우드를 먼저 뚫은 이색적인 이력이 붙었다. 우쭐하고 흥분할 만도 한데 28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수현은 차분했다. 물론 환희를 감추진 않았다. 서른에 화려한 잔치를 시작한 그는 대답 사이사이 탄산수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벤져스2’(27일 기준 373만9,781명)의 흥행을 마음껏 즐기는 듯했다. ‘어벤져스2’에서 수현은 유전공학박사 헬렌 조를 연기하며 이야기를 잇는 주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캐스팅 과정은 첩보작전과 다름 없었다. 2013년 수현의 소속사로 영문 대본이 하나 도착했다. 제목도 없고 대사만 있었다. “드라마 ‘7급 공무원’에서 어둡고 무거운 역할을 한 뒤라 영어 대본이 반가웠고 오디션에 응했다”고 수현은 당시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비디오로 촬영해서 보냈고 최종 오디션 때 조스 웨던 감독을 만났어요. 미리 받은 대본에 상대역이 조지 클루니로 돼 있었는데 현장을 가니 토르를 대상으로 생각하고 대사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당황하니 관계자들이 ‘맞아, 토르야’라고 했습니다. 끝난 뒤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디션 전후로 충무로 유명 여배우들이 탈락했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수현의 캐스팅엔 영어 구사력이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수현도 “영어가 분명히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크나 브루스 배너(마크 러팔로) 등에 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영어 대사로 말해야 하니 당연히 영어가 중요한 역할”이라는 나름의 분석도 곁들였다. 수현은 5세 때부터 6년 동안 미국 뉴저지에서 살았고 귀국한 뒤에도 국제학교를 다니며 영어를 익혔다.
수현의 출연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등장 횟수나 분량에 대한 욕심은 많지 않았다”고 했으나 “애드리브를 썼던 촬영 분량이 편집돼 아쉬웠다”고 말했다. “부상 당한 호크 아이(제레미 레너)의 몸을 고쳐준 뒤 파티에서 만나 그의 몸을 찌르며 ‘내가 상당히 잘 고쳤네’라며 농을 거는 장면이 가장 아까운 장면”이라고 했다. “단순히 과학적 정보만 제공하는 역할이 아니라 주요 등장인물들과 인간적으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반영이 안 됐다”고 덧붙였다.
화려하게 영화계에 첫 발을 디딘 그는 “앞으로는 작은 영화와 연극 등에 출연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작은 작품으로 시작하는 남들과 달리 거꾸로 연기이력을 살게 됐다”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10년쯤 뒤에는 한국영화도 찍고 여전히 외국에서 작품을 활발하게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무술만 하는 아시아인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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