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만 염려하며 산다면 텅 빈 마음만 남아
강상중 새 책 '마음의 힘'

우리는 모두 남겨진 자다. 저마다 내 자신과 다름없는 혈육을, 숱한 땀과 눈물을 함께 한 동료를, 때로는 죄 없는 어린 생명들을 먼저 다른 세상으로 보냈다. 남은 자들은 오열하거나 과거가 돼버린 망자의 이야기를 애처로워하며 자주 시들어간다.
재일동포 지식인 강상중씨 역시 지난 수년을 깊은 슬픔에 침잠했다. 아들이 마음의 병을 앓다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곧 동일본대지진을 겪었다. 2013년에는 세계화 상업화로 변질된 대학의 분위기를 못 견뎌 17년간 몸담았던 도쿄대를 떠나 세이가쿠인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 펴낸 신간 ‘마음의 힘’(사계절)에는 이러한 그의 고민이 응집돼있다. 그는 떠난 이들과의 기억, 이야기를 통한 ‘비의(秘義) 전수’가 우리 마음의 실질, ‘마음의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깊숙이 숨겨진 고통과 이야기의 계승을 통해 개개인이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만났던 이들을 잃은 채 오직 미래만을 염려하면서 현재의 순간순간을 살아간다면 마음의 힘은 사라지고 텅 빈 마음만 남지 않겠냐”고 반문하며, 과거로 눈을 돌리는 인식의 역전을 권유한다.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과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의 두 주인공 청년이 장년이 돼 만나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설정의 픽션을 에세이 사이에 끼워넣는다. 1차 세계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끝나는 두 소설의 주인공들은 고민과 방황을 거듭하는 청년이다. 강씨의 글에서 1945년 재회한 두 사람은 몇 번이고 실수와 도전을 거듭해온 서로의 평범한 삶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에 비하면 지금의 현실은 도망칠 곳도, 유예할 공간도 사라진 전쟁터다.
강씨는 이렇게 살기 힘들어진 까닭을 ▦가치관의 획일화로 대안이 사라지고 ▦연대가 약해지고 이웃이 사라진 점 ▦선택지가 줄어든 가운데 새로운 발상을 하는 힘이 빈약해서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된 점 등 세가지로 요약한다.
“전후 세계가 내걸었던 신화가 속속 땅에 떨어지고 그 가운데 인정도, 서로 돕는 마음도, 청빈사상도, 용감한 모험심도 모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다 타버린 허허벌판 위를 롤러로 짓누르며 나아가듯, 세계화라는 이름의 무지막지한 시장경제의 힘이 온 세상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대안으로 두 주인공이 삶에서 택한 일종의 ‘모라토리엄(지불유예)’ 자세를 권한다. 또 대학이 바로 이런 삶의 유예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세키의 ‘마음’에서 주인공의 스승이 들려주는 말은, 강씨가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맞닿아있다.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그림자를 스스럼 없이 당신 머리 위로 던져 주겠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두운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 안에서 당신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끄집어 내십시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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