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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쿠바노스 먹어봤니? 다국적 샌드위치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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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쿠바노스 먹어봤니? 다국적 샌드위치 열풍

입력
2015.04.2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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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즙이 살아있는 돼지고기

쿠바 샌드위치 식사·안주로 인기

향신료 고수와 빵의 절묘한 조화

베트남 샌드위치 아삭한 식감 일품

바게트 속에 각종 채소와 고기

모로코 샌드위치도 입맛 유혹

모호소스에 재운 돼지고기가 두툼하게 들어간 쿠바 샌드위치 '쿠바노스'는 맥주나 쿠바 칵테일 모히토와 잘 어울린다. 리차드 카피캣 제공
모호소스에 재운 돼지고기가 두툼하게 들어간 쿠바 샌드위치 '쿠바노스'는 맥주나 쿠바 칵테일 모히토와 잘 어울린다. 리차드 카피캣 제공

최근 몇 년 사이 당신은 근사한 식당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신경질을 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 샌드위치가 무슨 요리라고 여기 들어있데? 뭐 이렇게 비싸?’ 한국어의 화용체계에서 샌드위치라는 명사에 호응하는 일반적 동사는 ‘먹다’가 아니라 ‘때우다’이며, 샌드위치 가격이 짜장면을 넘어서면 조건반사처럼 심리적 저항이 일어난다. ‘빵 두 쪽에 이파리 몇 잎 먹었을 뿐인데….’ 라코타 치즈를 곁들였든, 유기농 채소를 끼워 넣었든 마찬가지다. 샌드위치 이름 옆에 동그라미 4개가 넘는 가격표가 붙어버리면, 어쩐지 푸코를 오용해 외치고 싶어진다. ‘이것은 요리가 아니다.’

뜨겁게 구워 먹는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뜨겁게 구워 먹는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샌드위치의 다국적시대

하지만 오늘날 이곳에서 샌드위치만큼 극적으로 요리의 자리로 격상된 음식이 또 있을까. 떡볶이와 김밥에까지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이 붙는 세상에 샌드위치라고 정찬 메뉴가 되지 못하라는 법은 없지만, 샌드위치의 스토리에는 각별한 데가 있다. 길거리 토스트가 대세였던 이 음식은 브런치 열풍과 함께 베이커리 카페의 핵심 메뉴로 부상한 데 이어 이제는 어느 양식당에 가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별한 요리 메뉴가 되었다. ‘카페 마마스’로 대표되는 샌드위치 전문 레스토랑을 비롯해 백화점과 쇼핑몰, 특급호텔까지도 샌드위치 열풍에 휩싸여 프리미엄 샌드위치 대전을 벌이고 있다. 도대체 왜?

조금 호들갑스럽게 말하자면, 샌드위치에는 역사와 지리를 무한히 확장하고 싶은 다국적주의 혹은 코스모폴리탄적인 욕망 같은 것이 있다. 빵 사이에 무엇을, 어떻게 끼워 넣느냐에 따라 무한 변주가 가능한 샌드위치의 기본 구조는 무엇이든 조립하려는 우리 시대의 DIY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잠깐. 여태껏 클럽 샌드위치나 BLT 샌드위치 같은 것을 떠올렸다면 곤란하다. 오늘날의 샌드위치는 쿠바와 베트남과 모로코를 거쳐 뉴욕의 푸드트럭에까지 끝없이 외연을 확장하며 여로를 이어가고 있는, 다른 어느 음식보다 혁신하고 있는 음식이다. 실크로드를 방불케 하는 ‘샌드위치 로드’가 지금 작성되고 있는 중이다.

랍스터 샌드위치.
랍스터 샌드위치.

두툼한 돼지고기가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쿠바노스’

올 1월 개봉해 잔잔하게 흥행에 성공한 미국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광고카피는 ‘공복 주의’였다. 하지만 식후 관람객마저 영화 속 쿠바 샌드위치를 보고 군침을 흘려야만 했다. 거의 ‘4D’ 수준으로 식욕을 자극했던 이 영화 덕분에 급기야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과 한남동을 중심으로 쿠바 샌드위치가 메뉴판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쿠바 샌드위치는 이 영화에서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사실상 주인공이다. 영화는 일급 레스토랑의 셰프였던 칼 캐스퍼란 인물이 자신의 요리를 혹평한 유명 음식평론가에게 홧김에 욕설 트윗을 보낸 후 식당을 그만두고, 쿠바 샌드위치를 파는 푸드트럭을 몰며 방랑하는 로드무비다. 파경을 맞은 쿠바인 아내의 음식이었던 이 샌드위치로 대박을 치고, 잃었던 명성과 가족을 되찾는 이 성공담의 영화는 돼지목살을 삶고, 모호(Mojo) 소스를 바르고, 빵을 굽고 누르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개인의 성장담과 병치시킨다. 그러므로 쿠바 샌드위치 ‘쿠바노스’를 먹는다는 것은 단지 특이한 샌드위치를 맛본다는 색다른 경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보여준 가족애의 회복이라는 뭉클한 체험을 공유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쿠바노스는 먹고서도 뭔가 허하다는 샌드위치 특유의 약점을 두툼하게 썰어 넣은 삶은 돼지고기로 반박한다. 돼지고기에 치즈 두 장, 햄까지 들어간 고단백 음식이다. 상대적으로 채소가 적어 다소 느끼할 수 있는 이색 풍미의 이 샌드위치에서 핵심은 쿠바 특유의 향을 강하게 풍기는 모호소스. 이 소스에 돼지고기를 재운 후 머스터드와 피클을 넣어 느끼한 맛을 제어한다. 호기롤이든 치아바타든 빵 안에 식재료들을 넣은 후 그릴 프레스에 넣어 3분의 1 크기가 되게 꾹 눌러주면 된다.

이태원의 유명 라운지 바 ‘리차드 카피캣’, 경리단길의 ‘320 libre’ 등이 요새 쿠바샌드위치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곳들. 미국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온 리차드 카피캣의 이대우 대표는 “3월 메뉴판에 올라간 쿠바 샌드위치가 레스토랑을 대표하는 가장 잘 팔리는 메뉴가 됐다”며 “육즙이 살아있는 돼지고기 덕분에 든든한 식사로도, 맥주 안주로도 좋아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격은 1만4,500원.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와 모로코 샌드위치

바게트에 아삭한 야채와 고기를 끼운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 고메이494 제공
바게트에 아삭한 야채와 고기를 끼운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 고메이494 제공

베트남 여행의 추억을 환기시키는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는 쿠바 샌드위치에 앞서 ‘샌드위치의 제 3세계 시대’를 연 음식이다. 동남아 풍미의 주역인 향신료 ‘고수’가 빵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 별미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 프랑스 치하의 식민지 시절 베트남 사람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는 반미는 바게트에 돼지고기, 각종 채소 등을 넣고 고수와 칠리소스로 마무리한다. 돼지고기 대신 쇠고기나 닭고기, 새우 등 다양한 식재료로 대체한 메뉴들도 있다. 쿠바 샌드위치와 달리 아삭한 식감이 강조되는 야채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이태원과 소월길 두 곳으로 매장을 확대한 반미 식당 ‘레호이’를 비롯해 ‘라이 포스트’, 신촌 ‘하드 투 포겟’ 등이 유명하다. 가격은 6,000~8,000원선.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의 식품관인 ‘고메이494’는 지난해 10월 뉴욕 푸드트럭의 핫 아이템으로 입소문을 몰고 다녔던 ‘랍스터바’의 랍스터 샌드위치를 필두로 ‘월드 샌드위치’의 유행을 집대성하고 있다. 두 달 간의 시험판매 이후 12월 정식 오픈한 랍스터바는 지금까지 월 평균 1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3월 한 달간은 레호이의 반미를 팝업스토어의 형태로 선보였다.

샌드위치는 여행지로서도 여전히 낯선 모로코까지 그 반경을 확대했다. 4년 전 이태원 해방촌에 들어선 카사블랑카가 대표적. 모로코인 형제가 운영하는 이 식당은 바게트 속을 파낸 후 모로코식 감자 크로켓인 마쿠다를 비롯해 각종 채소와 고기, 새우 등 식재료를 두툼하게 끼워 넣는 모로코 샌드위치로 유명하다. 가격은 7,000원 안팎이다.

특급호텔도 가세한 샌드위치 대전

핫 플레이스를 달구는 샌드위치 열풍에 특급호텔이라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베키아 에 누보는 샌드위치와 샐러드, 과일로 구성된 스프링 런치세트(2만8,600원부터)를 최근 출시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도 남산 피크닉 고객들을 위해 게살 아보카도 샌드위치와 훈제 칠면조 샌드위치 등 7가지 종류의 샌드위치 중 하나와 샐러드, 과일, 물 등으로 구성된 피크닉 런치세트(4만3,000원)를 선보였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의 실란트로 델리는 고전적인 메뉴에서부터 파니니 샌드위치, 베트남식 야채롤인 하노이 샌드위치, 프랑스 지역 상파뉴의 바게트에 속을 채워 넣은 상파뉴 샌드위치 등 다양한 종류의 샌드위치를 테이크 아웃 메뉴로 판매하고 있다. 가격도 7,000~9,000원으로 저렴하다. 운동화 차림의 근처 직장인들이 오전 11시를 전후해 싹 쓸어 갈 정도로 인기다. 더워지는 날씨 때문에 샌드위치를 종류별로 한 개씩만 만들어 놓기 때문에 같은 종류를 2개 이상 구매하고자 할 때는 미리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야 한다.

이윤호 실란트로 델리 지배인은 “호텔 앞에 위치한 서울 성곽길과 새롭게 단장한 도심공원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피크닉을 즐기려는 직장인들이 매우 많아졌다”며 “부담 없는 가격으로 정갈하게 즐길 수 있는 호텔의 테이크 아웃 도시락이 최근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샌드위치는 여전히 때우는 음식이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식사할 시간이 부족해 대충 때우는 음식이었다면, 이제는 제대로 한끼 식사를 하면서 남는 시간에 더 특별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때우는 음식이 됐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동료와 남산의 벚꽃 그늘을 걷기 위해서 때우고, 누군가는 레스토랑의 어두운 불빛 아래서 연인과 좀 더 내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때운다. 그렇다면, 한끼쯤 또 때운들 어떠리.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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