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서 정작 필요한 우수 인력
대학과 공공연구소行 선호
기초과학·공학서 2020년까지
최대 10만명 인력 부족 전망도
독일선 산업 특성 연구과제
정부·대학보다 기업에 맡겨
차세대 신소재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A기업은 이달 초 마감한 연구개발직 공개채용에서 막판 필요한 인력들을 뽑아 놓고도 채용하지 못했다. 막상 입사하기로 한 지원자들이 마지막에 마음을 바꿨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기업에서는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없을 것이란 인식 때문에 필요한 우수 인력들이 대학 및 공공연구소를 선호한다”며 “정부에서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적절하게 공급받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B사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개발자를 뽑지 못했다. 국내 주요 대학과 협력해 개발자 채용절차를 진행한 B사는 지원자들에게 프로그램 작성 능력을 시험했으나 대다수 지원자들이 요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B사 사장은 “대학에서 학점 획득에 필요한 내용만 배우다 보니 정작 현장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기술을 다룰 줄 아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요즘 기업들 사이에 가장 큰 고민은 인력 채용의 불일치를 줄이는 일이다. 구직자 중에선 기업이 당장 필요로 하는 인력이 많지 않고, 정작 필요한 인력은 기업보다 대학이나 공공기관에 남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인력 채용의 불일치는 산업현장에서 그토록 목마르게 찾는 창의적 인재의 부재로 이어진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인사담당자 1,023명을 대상으로 이공계 인력채용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7%의 기업이 인력 선발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응답했다. 이는 곧 국가 인력 공급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정부와 국내 연구기관들이 제시한 각종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0대 유망산업으로는 친환경에너지, 환경기술, 수송탐사, 첨단도시, 정보통신기술, 로봇기술, 신소재나노, 바이오의약, 고부가식품, 첨단소재 분야가 꼽히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분야와 관련한 한국의 기술경쟁력과 인적자원 경쟁력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범용 인력을 주로 양산하는 현재의 대학 인력공급 상황을 감안하면 앞으로 기초과학과 공학분야에서 2020년까지 최대 10만명 정도의 전문인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다. 기업이 원치 않는 조건의 사람을 뽑다 보면 결국 언제 그만둘 지 모르는 잠재적 실업자만 늘릴 수 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원자들은 기업이 원하는 능력을 가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주로 대기업을 선호한다”며 “중소기업에 주로 고졸자가 취업한다는 인식이 강해 대졸 실업률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각한데도 올해 2월과 3월 청년 실업률은 11.1%와 10.7%를 기록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성장에 필요한 인력 수요와 공급 인력의 조건이 맞지 않는 채용 불일치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고학력자를 무더기로 양산하는 왜곡된 교육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하태형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은 “국내에 범용인재는 많지만 기업이 정작 필요한 우수인력은 부족하다”며 “자유롭고 통합적인 사고를 키워주기 보다 구조화되고 틀에 박힌 지금의 교육이 반복되면 창의적 인재가 나오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대학들은 취업에 유리한 IT 보건 의료 스포츠 관광 등의 실용학과를 과감히 개설해 기업 수요에 맞춰 유연하게 인재를 공급하는 고용친화형 시스템을 갖추는 데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대학에서 장기인턴십 산학특성화 프로그램을 확대해 기업수요에 적합한 실무경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작지만 강한 특성화 대학이 육성돼야 한다“며 “그래야 국가와 기업이 필요로 하는 다양하고 창의적 인재 공급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공공기관 연구개발이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점도 현장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 공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 예산에 의존한 수탁과제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다 보니 국내 산업구조에 맞는 실용적 연구보다는 이론에 치우친 논문작성에 에너지가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무역으로 연간 15조원을 벌어들이는 독일은 연구과제를 정부나 대학보다 기업에 맡기고 있다. 독일 최대 응용연구기관 브라운호퍼는 전체 예산의 3분의1을 민간에서 조달하고 있으며, 규정을 충족할 경우에만 정부예산을 지원받는다. 독일은 또 산업특성에 맞는 연구개발을 대학에서 수행하고 있으며, 공과대학의 경우 기업과 산학협력을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꼽는다. 독일 아헨공대는 매년 1,360건 이상의 산학협력을 통해 전체 예산의 40% 이상을 민간에서 조달하고 있으며, 독일의 주력산업인 자동차와 기계, 화학 분야의 경쟁력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혁신과 기술진보 실현을 위해 정부의 인적 투자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우수대학을 중심으로 기초연구 강화와 과학기술 핵심인재 육성에 주력하거나, 싱가포르처럼 자국 인력만으로 인재확보가 어려우면 세계적인 명문대 유치를 통해 우수학생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정부 주도의 인재양성과 공급을 지양하고 기업과 정부, 대학의 협력으로 인재 수요 및 공급을 공동으로 책임지는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이서희기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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