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관계 따라 총리 수명 갈려
나카소네ㆍ고이즈미 친미로 5년 집권
하토야마는 '반미'로 9개월만에 낙마
역대 일본 총리의 미국방문은 일본 정권의 명운을 좌우했다. 미국의 당대 정권과 밀착했던 총리가 장기집권 한 반면, 관계가 껄끄러웠던 총리는 단명을 면치 못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총리를 하려 한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미국 일정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1980년대 처음으로 ‘미일 밀월’이란 말이 나오게 한 주역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다. 1983년 취임 2개월 만에 미국에 간 그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미일동맹은 군사적 측면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당시 소련의 위협에 함께 대처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뒤 “공동 운명체”라고 선언했다. 나카소네의 전임자인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총리는 미일동맹의 군사적 측면을 경계하는 발언을 해 미국의 의심을 받던 상황이었다. 나카소네가 귀국하자 일각에선‘군국주의 부활’이란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후 두 사람 관계가 ‘론’(레이건 대통령)과 ‘야스’(나카소네 총리)로 불려지는 등 양국 관계는 급속히 친밀해졌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스승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2001년 9월 9ㆍ11 테러가 터지자 서둘러 방미 ‘테러와의 전쟁’에 전폭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그의 철학은 냉전 이후 ‘1강 체제’로 바뀐 국제무대에서 대미외교에 최우선 비중을 둔다는 것이었다. 대테러 협력을 지렛대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발 빠르게 밀착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2006년 총리직을 물러나기 직전 미국을 방문해 부시 전 대통령의 ‘에어포스 원(대통령 전용기)’을 함께 타는 장면은 일본인에게 선명히 기억되고 있다. 두 정상은 테네시주 멤피스의 엘비스 프레슬리 고향을 여행했다.
이처럼 미국 측의 기대에 부응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나카소네와 고이즈미 전 총리는 5년 전후의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두 사람은 모두 미국을 7차례나 방문했다.
대미관계가 정권의 수명에 타격을 준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민주당 정권의 첫 총리로 미국에 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설명했다. 당시 미국에선 일본과 한국 중국 중심의 지역 내 협력을 강조하는 이 구상이 ‘반미적’이란 의심을 사고 있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선거공약부터 오키나와(沖繩) 밖으로 후텐마(普天間) 미군 비행장을 옮기겠다고 주장해 미국을 불편하게 한 상황이었다. 그의 재임기간은 9개월로 끝났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장기집권에 대한 의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런던 금융가를 방문했을 때 말(馬) 장식물을 선물 받자 “고이즈미, 나카소네 두 총리도 말띠”라며 “두 분 모두 장기집권 했고 나도 말띠”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정에서 자위대의 역할확대로 미군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경제분야에선 중국을 견제하는 선봉에 나설 것을 자임하고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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