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보조교사·심화연수 등 줄고
예비 영어교사 교육지원은 아예 중단
시·도 교육청도 재정난에 사업 축소
교사들 "의사소통 중심 수업 힘들어"
서울 대방중 이석영 영어수석교사는 요즘 영어 수업이 부쩍 힘겨워졌다고 토로했다. 7~8년 전만해도 영어 전용 교실에서 원어민 보조교사와 함께 학생들 개개인의 영어 수준을 고려해 소통하며 영어 표현을 가르칠 수 있었는데, 요즘은 30명의 학생들을 혼자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교사는 “정부의 관심이 쏠렸던 실용영어 정책이 어느 순간 밀려나면서부터 원어민 보조교사를 더 이상 채용하지 않게 됐다”며 “영어 교구 예산도 줄어 의사소통 중심의 수업은 사실상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8학년도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과 함께 학생들이 실제 영어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영어 교육과정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교육 현장의 실용영어 관련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교육부에 따르면 원어민 영어 보조교사 배치, 영어교사 심화연수, 영어회화 전문강사 관련 정책 예산이 모두 축소됐다. 영어회화 전문강사 관련 예산은 지난해 607억원에서 올해 512억원으로 줄었고, 영어교사 심화연수 예산도 81억원에서 69억원으로 감축됐다. 이 사업들은 실용영어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대거 도입됐던 것들이다.
특히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영어교사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방침과 달리 교원양성기관에 대한 실용영어 교육지원은 올해부터 아예 중단됐다. 교육부는 2008년부터 국립 교대와 사범대에 원어민 영어강사를 배치해 예비 영어교사들의 실용 영어능력을 높여 왔으나 지난해 6억9,100만원의 예산을 끝으로 올해는 예산을 한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정된 재정으로 모든 사업에 똑같이 투자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에 비해 예산이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그래도 영어교사 심화연수나 영어회화 전문강사 관련 정책에는 예산이 많이 투입되고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교대ㆍ사범대의 원어민 강사 배치 사업은 기획재정부의 재정혁신 대상 사업으로 지목돼 예산이 삭감됐다.
일선 시ㆍ도 교육청도 각급 학교에 원어민 보조교사를 배치하고 영어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교사의 능력을 인증(TEE인증제)하는 등 독자적인 정책을 시행해 왔지만 최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부담 등으로 인한 재정난으로 실용영어 관련 예산을 줄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원어민 보조교사 관련 예산은 2013년 242억원(527명 채용)에서 2014년 224억원(504명), 2015년 175억원(391명)으로 계속 줄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교는 원어민 영어보조교사를 중심으로 한 실용영어 수업을, 중ㆍ고교에서는 분반수업을 통해 학생 맞춤형 영어 수업을 하려는 게 기본 목표지만 예산 부족과 국내 교사들의 실력 향상 등의 이유로 사업이 축소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어 교사의 능력을 키우려는 TEE인증제 관련 시교육청 예산도 2013년 5억5,900만원(640명 인증)에서 2014년 3억2,040만원(400명), 2015년 1억3,930만원(280명)으로 급격히 줄고 있다. 한 영어교육 전문가는 “이러한 정책들은 학생들에게 영어 의사소통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교사의 능력을 키우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인정받았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 축소ㆍ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석영 수석교사는 “원어민 보조교사ㆍ영어회화 전문강사와 같은 실용영어정책 예산은 기본적인 학교 운영 예산 외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인데 이런 예산들은 대부분 감축되고 있다”며 “학생과 교사 모두 효과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예산 문제로 축소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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