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로 기억한다. 서울 지역에서 첫 진보 교육감으로 당선된 곽노현 전 교육감은 취임 직후 교육청 청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들을 초대해 점심식사를 했다. 바쁜 일정 탓에 교육청의 주요 간부들과도 공식적인 오찬 자리를 갖기 전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새벽 5시에 출근해 아침 식사할 틈도 없이 일해야 하는 청소 노동자들의 고충을 들었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줬다.
교육청에서 가장 궂은 일을 하면서도 외부인 취급을 받던 용역업체 소속 환경미화원들은 곽 전 교육감의 초청으로 교육청의 당당한 가족 대접을 받았다. 보통 이런 훈훈한 미담은 자신의 선한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한 계산된 ‘퍼포먼스’인 경우가 많지만 곽 전 교육감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려 했고, 이들의 만남은 환경미화원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 정의로움…. 당시 곽 교육감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선거 당시 진보단일후보 경선 과정에서 경쟁했던 박명기 전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원을 줘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매수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도 분노 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사채까지 끌어 쓰며 선거를 준비했던 박 교수가 후보 사퇴 후 경제적 궁핍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선의로 줬다”는 주장에 대해 검찰은 후보 단일화를 위한 대가로 봤지만, 곽 전 교육감의 성품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행위가 용납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모든 후보들이 곽 전 교육감만큼의 선의를 가졌다면 모를까, 온갖 협잡꾼이 판치는 선거에서 ‘대가성 없는 사후매수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선거는 막장으로 치달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법원도 그의 ‘선의’와 상관없이 유죄를 선고했다.
서울의 두 번째 진보교육감인 조희연 교육감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을 지켜보면서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공소 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기소한 검찰의 ‘표적수사’라는 조 교육감 측의 주장에는 100% 공감한다. 13명이나 되는 진보교육감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현 정부의 태도를 고려하면 충분히 의심을 품을 수 있다. 또 선거 당시 논란이 됐던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에 대한 의혹 제기가 교육감 직을 당선 무효 시킬 만큼 중대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솔직히 헷갈린다. 아울러 조 교육감의 억울함이 클 것이라는 데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조 교육감의 억울함과 그의 행위는 별개다. 공소 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기소한 것은 검찰이 그만큼 충분히 조사한 뒤 신중하게 기소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허위사실 공표죄가 선거운동 기간 표현ㆍ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반대로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흑색선전과 보수 세력의 단골 메뉴인 ‘색깔론’을 견제하는 기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는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조 교육감은 어쨌든 허위사실을 공표한 셈이다. 때문에 재판에서는 ‘의혹 제기 당시 사실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을만한 근거를 갖고 있었음’을 집중적으로 입증했어야 했다.
조 교육감의 변호인은 1심 재판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은 평생 학자로 지내며 사회적 양식을 위해 활동한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이 자기 명예를 걸고 허위사실을 공표하겠느냐”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학자로서의 양심, 도덕성, 정의감, 개혁 의지를 과신해 범죄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무죄 입증에 소홀했던 건 아닌지 궁금하다.
성경 마태복음엔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구절이 있다. 전ㆍ현직 진보 교육감들의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알기에 그들의 ‘뱀과 같은 지혜’가 더욱 아쉽다.
“제 개인의 재판 결과가 선거 활동 중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길 바란다”는 조 교육감의 말처럼 ‘조희연 개인의 재판 결과’로 인해 서울 교육의 혁신 정책이 좌초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한준규 사회부 차장대우 manb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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