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하면 망친다. 외교가 그렇다. 무위는 무능 증거고 외면은 직무유기다. 나서야 할 때다. 왜 협상이 싫나. 호전하거나 두렵거나 아쉽지 않아서다. 일본이 일어서든 통일이 멀어지든.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비슷한 점이 많다. (…) 그러나 시 주석과 박 대통령의 외교 행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시 주석이 지난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만난 건 이러한 차이를 잘 보여준다. (…) 시 주석은 “일본은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하긴 했지만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국제 사회의 폭 넓은 환영을 받고 있다”며 일본의 동참을 요청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국익을 위해선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 마음과는 달리 미소도 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시 주석은 알고 있는 듯 하다. 반면 박 대통령은 여전히 아베 총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다. 일본 우익 정치인의 역사 인식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만나지도 않는 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만나야 한다. (…)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은 수십년간 내전까지 치른 적대관계지만 시 주석은 그런 ‘원수’와도 만나 얘기한다. (…) 반면 박 대통령은 북한 지도자를 만날 생각조차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 통일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 시 주석은 국익을 위해서 가리지 않고 정말 다 만나고 있는 반면 박 대통령은 전략 없이 그야 말로 다 피하고 있다는 인상만 주고 있다. (…) 국가 지도자는 상대방이 아무리 싫어도 만나야만 하고 아무리 미워도 외교 최일선에 나서야 할 때가 있다. 더 이상의 직무유기는 곤란하다.”
-다 만나는 시진핑, 다 피하는 박근혜(한국일보 ‘특파원 칼럼’ㆍ박일근 베이징 특파원) ☞ 전문 보기
“한국 외교가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러브 콜(Love call)을 받는 축복(祝福) 시대’를 살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을 건너뛰어 미국과 중국으로 달려가는 일본 앞에서 호들갑을 떨 이유도 없다. 일본의 어느 국제관계 전문가가 실토(實吐)했듯 일본은 외교에 서툰 나라다. 본심(本心)을 가볍게 노출하는 외교, 쓸데없이 이웃의 원한(怨恨)을 쌓아가는 외교는 후진(後進) 외교다. (…) 일본의 무책(無責)과 불의(不義)를 탓한다고 해서 한국 외교의 정세 오판(誤判)과 정책 실패의 책임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 물밑에서 중국과 일본이 정상회담을 모색하고 있다는 걸 낌새도 채지 못했다면 보통 둔한 게 아니다. (…) 대일(對日) 외교를 두고 역사ㆍ영토 문제와 안보ㆍ경제를 분리해서 대응하고 일본과 접촉 자체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충고와 조언(助言)이 끊이지 않았다. (…) 코뚜레를 뚫고 굴레를 씌운 소도 고삐를 놓으면 제멋대로 노는 법이다. 한국 외교가 손을 놓아버린 후의 일본이 그 모습이다. (…) 사람이건 국가건 휜 게 저절로 펴지는 법은 없다. 굽어진 일본을 바로잡으려면 놓았던 고삐를 다시 잡아야 한다. 대일 외교를 돌아볼 때다.”
-일본의 後進 외교, 한국의 無能 외교(4월 25일자 조선일보 기명 칼럼ㆍ강천석 논설고문) ☞ 전문 보기
“‘역사에 길이 남을 협상’이라고 오바마 대통령은 말했다. 이란 핵 문제 말이다. (…) 협상은 단지 해결의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비확산체제의 중대한 진전이 이루어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 세계는 묻는다. 북한 핵 문제는요? 시사점을 찾기 위해, 이란 핵과 북한 핵을 비교해보자. 차이가 적지 않다. 우선적으로 오바마 정부의 관심 수준이 다르다. (…) 이란 핵 협상도 벅찬 상황에서, 성과가 불투명한 북핵 문제에 매달릴 유인이 없다. 중재자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도 다르다. 이란 핵 협상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이 나섰다. (…) 적극적 중재자는 협상이 쓰러지지 않게 부축하고, 불신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길을 찾는다. 북핵 문제에 그런 중재자는 없다. (…) 6자회담이 엎어진 지 이미 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누구 하나 일으켜 세우려 하지 않는다. (…) 이란과 북한의 협상 의지도 다르다. (…) 이란은 고립의 문을 열고 국제사회로 걸어 나왔다. (…) 북한은 이란만큼 양보할 의지가 없다. 이란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 수준의 차이도 크다. 북한의 핵능력은 계속 강화되고 있다. (…) 방관정책은 실패했다. 억지전략은 해법이 아니다. 미사일 방어망은 효과적이지 않다. 이란 핵 문제가 북한 핵 문제에 주는 유일한 교훈은 ‘외교의 귀환’이다. 이란 핵 협상을 비판하는 공화당 인사들에게 오바마 정부는 “외교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왜 전쟁으로 해결하려 하느냐”고 묻는다. (…) 미국도 북한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리라도 나서야 한다.”
-이란 핵과 북한 핵(한겨레 ‘세상 읽기’ㆍ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 전문 보기
모르면 무능이고 모른 체하면 비겁이다. 그래도 봐주는 건 아비 닮았다 믿거나 불쌍해서다. 실력 없이 애국해봐야 소용 없고 엇나간 근면은 위험하다. 성역-단상에선 평생 모르겠지만.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한 풍경이다. 당시 김무성 대표는 친박계 좌장이었다. 어느 저녁 자리 술이 얼큰한 김무성, 박근혜에게 “돈이 다 떨어졌습니다. 삼성동 집 20억원쯤 갑니다. 팔고 신당동 집으로 들어가십시오” 했다. 점점 얼굴 일그러지던 박근혜, 버럭 했다. “제가 언제 돈 쓰라고 했어요?”(2013년 5월25일 ‘동아일보’ 보도) (…)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지. 무능 아니면 비겁이다. 10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진 뒤, 박 대통령이 보인 첫 반응은 이틀 뒤 “검찰이 성역 없이 대처하기 바란다”이다. (…) 수사는 이완구·홍준표에서 시작할 것이다. 대통령은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이완구는 본인 재보궐선거, 홍준표도 본인 당 대표 선거였다. 그러니 ‘성역’이 아니다. ‘성역’은 홍문종·서병수·유정복이다. 2012년 대선자금과 연결된다. 그런데 검찰은 ‘성역’을 ‘야당’으로 생각하는 건가? (…) 2007년 박 대통령이 ‘삼성동 집’ 팔았더라면, 박근혜는 이명박에 앞서 대통령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는 그런 선택 못한다. 그 비난 무릅쓰고 ‘문고리 3인방’ 지켜낸 그다. 박근혜는 ‘삼성동 집’과 평생 함께할 것이다.”
-박근혜는 ‘삼성동 집’ 못 판다(한겨레 ‘편집국에서’ㆍ권태호 정치부장) ☞ 전문 보기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특히 박근혜 같은 권위형 정부에서 국가운영의 독립변수는 대통령뿐이다. 다른 누구도 이 난국을 대신 풀 수 없다. (…) 그러니 선장이 정신 차리길 다시 절박하게 주문할 수밖에 없다. 원인은 복합적이나, 외양으로 나타나는 의전(儀典)형 통치스타일이 많은 걸 설명한다. 권위와 예우로 받쳐진 단상에 높직이 앉아 다들 아는 원론을 칙지(勅旨)로 신민들에게 내려 보내는. (…) 구현할 철학과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애국심은 허망하고, 실질과 유리된 근면은 어긋난 자기확신만 강화한다. 무엇보다 승부근성은 통합의 대통령으로선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는 생각 다른 국민과 여전히 승부를 겨루는 것처럼 보인다. (…) 이제라도 권위적 선민의식을 털어내고 단상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기대하기 쉽지 않다. 공주로 자라 20대에 퍼스트레이디를 한 그에게 단상의 삶은 체질이다. 촌음이 부족한 청와대에선 진지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어렵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박 대통령이 돌아오면 보름에서 한달 쯤 모든 걸 제쳐둔 휴가를 갖기 권한다. (…) 그래서 국가개조 따위를 되뇌는 단상의 승부사가 아니라, 질퍽한 흙바닥을 마다 않는 눈높이 맞춘 관리자로 내려와야 한다.”
-대통령에게 ‘안식月’이라도(4월 25일자 한국일보 기명 칼럼ㆍ이준희 주필) ☞ 전문 보기
물귀신 여당의 물타기 전술에 부패가 착종되자 야당은 죽고 유체이탈 권위자는 해방되더라.
“자수성가로 기업을 일군 성완종 회장은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경제사범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이다. (…) 돈에 혀가 있다고 믿었던 그는 사람들에게 말하듯 돈을 뿌렸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치가 마른 땅처럼 그 돈을 빨아들였다는 점이다. (…) 성완종 회장은 죽기 전 그 리스트에서 ‘의리 없는’ 8명을 추려내 메모로 남겼다. (…) 성 회장의 표적에서 벗어난 이들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의리’를 지켰건 버렸건 돈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달콤한 ‘돈의 대화’를 속삭였을 것이다. 혀도 없는 돈과 대화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부패했다’고 부른다. (…) 성완종 리스트를 두고 여야는 서로 “너희는 떳떳하냐”고 손가락질이다. 메마른 땅 깊이 돈줄이 선인장 뿌리처럼 엉킨 사막 같은 우리 정치판에 지진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새 땅 위에서 미래 비전을 설득하는 청렴한 지도자가 나와 정치의 문법을 바로잡는다면 기업인도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 대통령은 사람들을 (자신에게) ‘충성파’와 ‘비충성파’로만 분류하는 것 같다. 기왕에 부패 척결을 외쳤으니 그 충성파를 다시 ‘돈에 혀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눠 보시기를 권한다. 부패한 측근들로 이 땅의 부패를 바로잡는 것은 무망(無望)한 일이다.”
-돈에는 혀가 없다(조선일보 ‘朝鮮칼럼’ㆍ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 전문 보기
“정치권의 부패 이슈는 야당과 진보진영의 기대처럼 보수 여당의 치부를 드러내어 그들을 고립시키는 이슈로 작용하기 힘들다. 오히려 야당 인사가 조금이라도 연루되었음이 드러났을 때 도덕 면에서 상대적 우위가 있다고 여겨져온 야당과 진보진영에 더 크고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정치 자체, 정치인 전체를 싸잡아 부패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결국 ‘정치는 썩은 것’이라는 정치 혐오와 냉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 혐오와 불신이 기존 기득 정치구조를 더 강화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래서 성완종 리스트를 부패라는 프레임에 가두면서 지루한 공방으로 이어가는 야당은 무능하고 답답하다. (…) 정치인 부패 문제가 그 성격과 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늘 불거지기 마련인 이슈라면, 이에 대한 정치권의 위기관리 대응이 중요하고 대중 여론도 이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잣대로 보면 박근혜 정부와 여당은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 이완구, 홍준표, 김기춘 모두 곧 들통날 거짓말을 연일 뱉어내고, 어설픈 회유 협박 시도로 오히려 자신들의 의혹이 사실에 가까움을 보여주었다. 온갖 의혹과 자질이 의심되는 총리를 애써 임명한 장본인이 이제는 총리의 사의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며 책임 회피성의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것은 ‘무능’을 넘어 대통령의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당장 재보선에 큰 영향을 주진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정부가 위기관리 능력이 없는 무능한 정부임을 극명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훨씬 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반부패 프레임의 덫(한겨레 ‘한겨레 프리즘’ㆍ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소장) ☞ 전문 보기
책은 소비되며 생산한다. 새롬을 낳는 건 기쁨이고 저자는 먼저 독자인 법. 무의미의 의미.
“은퇴 후 생활의 판타지 중 하나는 높은 책장이 가득 채워진 서재, 푹신한 안락의자에 발 뻗고 기대앉아 좋아하는 책들을 실컷 읽는 것이다. (…) 생산활동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을, 순전한 쾌락과 허영으로 책을 소비하는 그 순간을 꿈꾼다. 26일 서울도서관에서 막을 내린 한국출판문화상 특별전시는 이처럼 즐거운 책 소비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 우리는 책을 소중히 하는 사회가 풍성해짐을 안다. (…) 책에 쓰인 것이 늘 옳기 때문이 아니라, 각기 다른 수준의 지식과 주장과 취향이 어느 책인가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내 것으로 만들고 나면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 읽어야 할 책 목록이 펼쳐진다. 그런 식으로 사람은, 인류는 지금에 다다랐다. 인류 공동의 지식과 표현의 저장소에서 자유롭게 헤매던 이들이 나중에 또 한 권의 목록을 추가하게 마련이다. (…) 책들 틈바구니에서 시간을 죽이던 열 명 중 한 명은 어쩌면 읽던 책을 마저 읽기 위해, 또는 자극받은 호기심을 다른 책으로 풀기 위해 서점으로 발길을 돌리게 마련이다. 책과 사랑에 빠진 이들 중 한 명쯤은 그 자신이 책을 쓰는 저자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다 수만, 수백만명에게 영감을 줄 훌륭한 책의 저자가 그 안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봄에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만나도 좋은 이유가 아닐까.”
-책과 함께 봄을(한국일보 ‘편집국에서’ㆍ김희원 문화부장)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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