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산액 30억 이상 43곳 우선
문화재 입장료 카드 결제도 확대
조계종이 대규모 사찰의 재정 공개를 의무화한다. 지금까지 종단에 보고만 하고, 공개 여부는 자율에 맡긴 각 사찰의 예결산 내역을 투명화한다는 취지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종교단체의 도덕성과 신뢰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가 높아지면서, 사찰 재정공개가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우선 대상은 조계종의 직영사찰(4곳), 특별분담금사찰(7곳), 연 예결산액 30억 이상 사찰(32곳) 등 모두 43곳으로 조계종 전체 사찰(2,500여곳) 예산의 약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7월부터 사찰운영위원회의록, 인터넷 홈페이지, 사보(寺報) 등에 예결산 내역을 게재할 예정이며 평소에도 신도 등이 요구하면 열람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직영사찰은 조계종 총무원장이 직접 당연직 주지를 맡아 임명 주지와 함께 재정을 관리하는 절로 조계사, 봉은사, 보문사, 선본사가 해당한다. 특별분담금사찰은 재정규모가 커 종단에 분담금을 많이 내도록 규정된 곳으로 도선사, 연주암, 낙산사, 봉정암, 석굴암, 보리암, 내장사 등이다. 공개 대상은 매년 확대될 계획이다.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받는 사찰들의 신용카드 결제도 확대한다. 현재 해당 조계종 사찰 총 64곳 중 카드결제가 가능한 것은 22곳(34%) 뿐이다. 문화재구역 입장료는 신도들의 기도ㆍ불공 수입 외에 대형사찰의 주요 수입원이지만 일부 사찰이 현금결제만을 고집해 투명성에 의문이 제기돼왔다. 조계종은 올 6월까지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을 도입하도록 하는 종단 사찰예산회계법 시행령을 제정한다.
조계종은 9월까지 공개ㆍ보고 의무를 외면하는 사찰에 대한 제재 방안을 마련해 종법개정안을 마련한다. 현재 고려되는 방안은 ▦공개 거부 시 주지의 재임용 제한 ▦행정지원 중단 ▦상시적 감사 실시 등이다. 자승 스님은 “재정투명성이 바탕이 돼야 중생구제라는 불교 본연의 가치 실현, 불교 발전의 길이 열리게 되며 이를 통해 사부대중의 신뢰와 책임 있는 참여가 가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시도가 전체 사찰 살림의 투명한 공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조계종은 94년 이미 재정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2012년 보고를 의무화한 관련법을 만들었지만, 2004~2013년 종단에 회계를 보고한 사찰은 전국 2,500여곳 중 950여곳에 불과하다. 종단이 주지 인사에 관여할 수 없는 사찰이나, 종단 규정에 개의치 않는 사찰이 적지 않은 탓이다. 결국 실효성이 있는 제재 방안 마련에 성패가 달린 셈이다.
한 종단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고민할 부분이 많지만, 공개가 의무화되면 비공개하는 사찰은 외부 비판이나 공개압박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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