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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온 거물들의 슬픔 '재보선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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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돌아온 거물들의 슬픔 '재보선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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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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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라는 큰 태풍이 정국을 몰아치는 가운데 2015년 상반기 재보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여권 실세들이 대거 연루된 성완종 파문으로 인해 이번 선거는정권 심판의 성격이 어느 때보다 부각돼 있다. 하지만 애초 이번 선거의 주요 관전 포인트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서울 관악을과 광주 서을에 각각 도전장을 낸 정동영 천정배 전 의원의 귀환 여부였다. 사실상 정치 생명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이들의 당선 여부가 야권의 권력 지형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재보선은 거물 정치인들의 귀환 무대였다. 동시에 부침 탓인지 복귀한 거물 정치인들이 정계 은퇴 기로에 선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재보선으로 입성한 거물 정치인들의 행보를 돌아봤다.

이완구(왼쪽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지난 2013년 4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선서를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이완구(왼쪽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지난 2013년 4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원선서를 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①여야 대표ㆍ총리 등 거물 삼각편대의 귀환

2013년 4월 열린 재보선은 말 그대로 현재 대한민국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는 거물들의 귀환 무대였다. (▶기사보기) 당시 선거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인사는 무소속으로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안철수 의원이었다. (▶기사보기)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대권 도전 꿈을 미뤘던 안 의원이 채 6개월도 안돼 정계에 복귀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치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울 노원병이 상대적으로 야권 우세지역이라는 점에서 지역에 아무 연고가 없던 안 의원이 여당 텃밭인 부산 등 더 험지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쇄도했다. (▶기사보기) 떠들썩한 신고식을 치르고 출마한 안 의원은 전국적 인지도를 무기로 무난하게 당선돼 원내에 입성했다. 안 의원은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합당을 한 뒤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자리에 올랐다. (▶기사보기) 하지만 재보선으로 입성한 안 의원은 지난해 7ㆍ30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내려 놓게 된다. (▶기사보기)

같은 선거에서 귀환한 또 한명의 거물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19대 총선 당시 백의종군의 설움을 딛고 여의도에 복귀한 김 의원은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에 나선다. (▶기사보기) 청와대를 위시한 친박 핵심 그룹서 서청원 의원을 내세워 강하게 도전했지만, 비박계 지지를 등에 업은 김 의원이 대표에 선출돼 현재까지 당을 이끌고 있다. (▶기사보기)

27일 총리직서 사임한 이완구 전 총리도 안철수 김무성 의원과 함께 정계에 복귀했다. 재보선 당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이완구 의원은 이후 더 굴곡진 정치 행보를 걷는다. 이 의원은 여의도 복귀 후 친박 핵심 그룹의 전폭적 지원 속에 경선 없이 원내대표에 선출된다. (▶기사보기)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 무난하게 원내 사령탑의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던 이 의원은 국무총리에 지명되면서부터 풍파를 겪는다. 총리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부동산 투기 의혹과 왜곡된 언론관 등이 알려지면서 위기를 맞았고, (▶기사보기) 우여곡절 끝에 총리에 취임한 지 두 달도 안 돼 성완종 파문이라는 치명타를 맞는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의원에게 2013년 재보선 당시 뒷돈을 건넸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파문 이후 사퇴 압박을 받던 이 의원은 결국 지난 20일 총리 사의 의사를 표시한다. (▶기사보기)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2011년 4월 27일 경기 분당의 선거사무소에서 재보선 승리가 확정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성남=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2011년 4월 27일 경기 분당의 선거사무소에서 재보선 승리가 확정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성남=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②‘천당보다 분당’이라는 與 텃밭서 살아 온 손학규

2011년 4월 재보선이 열린 경기 성남 분당을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다. 임태희 한나라당 의원의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으로 공석이 됐지만 당시 누구도 한나라당 후보의 수성을 의심치 않았다. 이에 야당 내부서는 이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 수도권에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는 의견이 분출했고, 이는 손학규 대표의 출마로 이어진다. (▶기사보기 ) 야당의 손학규 대표 차출설에 눈치를 보던 한나라당은 정운찬 전 총리의 전략 공천 얘기가 꾸준히 흘러 나왔지만, 논란 끝에 강재섭 전 대표의 공천을 확정한다. (▶기사보기) 각종 여론조사 결과 막판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접전이 펼쳐졌지만 당초 예상을 깨고 손학규 대표가 승리한다. (▶기사보기) 이를 두고 정권 심판 분위기에 진보 성향의 40대 넥타이부대의 표심이 승부를 갈랐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사보기 ) 하지만 손학규 대표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시련을 맞는다. 같은 해 하반기 열린 서울시장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단일화 경선에서 무소속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패해 제1 야당에서 후보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손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이를 번복해 리더십에 상처를 입는다. (▶기사보기) 손 대표는 지난해 7월 경기 수원병 재보선에 나섰다가 패하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기사보기)

이재오 의원이 2010년 7월 28일 서울 은평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재보선 승리가 확정되자 손을 들고 밝게웃고 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이재오 의원이 2010년 7월 28일 서울 은평의 선거사무소 앞에서 재보선 승리가 확정되자 손을 들고 밝게웃고 있다.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③ 野風 속에 복귀한 정권 2인자 이재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참패한다. 선거 전 천안함 폭침 등으로 내심 보수층 결집을 기대했던 한나라당에는 큰 충격이었다. (▶기사보기) 위기의 한나라당 앞엔 7월 재보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칫 지방선거에 이어 재보선까지 패할 경우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동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이때 위기탈출의 선봉장으로 나선 이가 이재오 의원이었다. 18대 총선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의원에 밀려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이명박정부의 2인자 이 의원이 서울 은평을에 다시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기사보기) 한나라당에 안 좋은 여론을 의식해 중앙당 차원의 지원까지 거부하며 선거에 매달렸던 이 의원은 장상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여의도에 복귀한다. (▶기사보기) 이 의원은 당선 11일 만에 특임장관에 임명돼 당청간 가교 역할을 하며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한다. (▶기사보기) 하지만 이후 한나라당은 박근혜 체제로 완전히 탈바꿈하면서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고, 이명박 정부의 창업공신인 이 의원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이 의원은 박근혜 정부 들어 쓴소리를 잇따라 내놓으며 친이계 좌장 역할을 하는 동시에 ‘개헌 전도사’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기사보기)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10월 30일 경기 화성의 선거사무소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10월 30일 경기 화성의 선거사무소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④ 잡음 끝에 복귀한 친박 좌장 서청원

2013년 10월 재보선은 2곳서 만 열려 상대적으로 열기가 덜했다. 하지만 원외 친박 좌장격인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의 정계복귀 여부로 정치권 내부의 이목은 집중됐다. 서 의원의 복귀는 공천 과정부터 험로의 연속이었다. 비리 경력이 있는 서 의원을 아무 연고가 없는 경기 화성에 공천하는 것 자체가 명분이 없다는 여당 내부 반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기사보기) 당내 반발에 주춤한 서 의원은 출마선언문에서 외가가 화성과 연고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특유의 '공력'으로 내부 반발을 무마하는데 애썼고, 결국 국회 재입성에 성공한다. (▶기사보기) 하지만 이후 서 의원과 함께 화성갑 출마를 선언했다가 석연찮은 이유로 그만 둔 김성회 전 의원이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으로 임명되자, 야당을 중심으로 서 의원과 김 전 의원간 ‘빅딜설’이 제기되는 등 뒷말이 무성했다. (▶기사보기) 7선의 서 의원이 복귀하자 여당의 권력구도는 요동친다. 그가 청와대를 등에 업고 있다는 점에서 이듬해 있는 당 대표 선거나 후반기 국회의장 모두에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서 의원은 당권 도전을 선언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김무성 의원에게 패하면서 의욕에 찼던 복귀 후 첫 행보는 시련을 맞는다. (▶기사보기)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7월 28일 서울 사당동에서 재보선 유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7월 28일 서울 사당동에서 재보선 유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

⑤ 야당 텃밭에서 살아 남은 ‘제2 박근혜’ 나경원

세월호 참사와 잇따른 인사 논란으로 집권 2년 차에 코너에 몰린 새누리당은 2014년 6월 지방선거서 가까스로 체면치레에 성공한다. (▶기사보기) 하지만 민심 이반을 감지한 새누리당 앞에는 15개 지역구에서 펼쳐지는 7ㆍ30 재보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새누리당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서울 동작을 후보가 최대 고민이었다. 서울 동작을은 18,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이 사실상 ‘개인기’로 당선됐지만, 전통적으로 야당 텃밭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빅카드’로 꺼낸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향해 구애를 폈지만, 김 전 지사의 거부로 난관에 부딪친다. (▶기사보기) 이에 당 지도부는 고심 끝에 나경원 카드를 방향을 튼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와 19대 총선 공천 포기 뒤 절치부심하던 나 의원도 당의 부름을 받고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다. (▶기사보기) “아무리 나경원이라도 동작은 어려울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뒤엎고 나 의원은 1,000여표차로 당선됐고, 재보선 승리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 기사보기) 나 의원은 복귀 이후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의 해양수산부 장관 이동으로 공석이 된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맡는 등 '제2의 박근혜'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숨가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보기)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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