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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아침이면 다 괜찮아질거야”

입력
2015.04.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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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가 탄식한다. “어, 저 아저씨가 내 잎을 잘라가 버렸어” 트럭 바퀴 틈에 끼었던 잔디는 “내 친구의 영혼이 지금쯤 천국에 도착했겠지”라며 밤새 머금었던 이슬을 떨군다.’ 책장 하단에 꽂혀 있던 동화전질 속 안데르센.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아픈 어른들을 위로했을 것 같다. ‘할미꽃이 속삭인다. “아직도 상처에서 피가 나요. 많이 아파요”라고 말하는 유채꽃에게 “아가야, 할미가 노래를 불러줄 테니 어서 자렴. 내일 아침이면 다 괜찮아진단다”라고.’

동네 꼬마녀석들과 어울려 나지막한 나무에 기어 올라가면 으레 전사가 되어 우주를 날아다닌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려고 할 때쯤 멀리서 엄마들의 합창이 들리는데 아이들은 대답만 할 뿐 끝내 손을 잡아 끌 때까지 멍들고 까지면서도 주워온 장판에 올라앉아 미끄럼을 타느라 날이 저무는 줄을 모른다. “너는 이 다음에 커서 절대 짧은 치마를 입을 수 없을 거야.” 여자애 무릎에 머큐롬 마를 날이 없었으니 오죽 속이 탔으면 이런 협박을 동원했을까. 그러나 등에 가방을 메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뛰기 싫어진 아이는 동화책에 코를 박고 인형놀이를 시작했다. “공주와 왕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림형제의 동화는 이렇게 계집아이를 소녀로 바꿔놓았고, 긴 바지를 즐겨 입는 여자는 동화책이 사라진 책장에 어지러운 세상을 꽂아놓았다.

춤 동네에서 좌충우돌 떠돌며 그림형제의 러브스토리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들리지 않는 말을 속삭이는 춤에는 그리 많은 공연을 보고 관련자료를 뒤져봐도 알듯 모를 듯 처연한 동화, 안데르센의 은유만 있었다. ‘해질 정도로 닳았던 그림형제와 새것이나 다름없던 안데르센.’ 결국 전공생도 아니니 판단하는 기준 역시 단순해서 재미있는 것과 졸리는 것으로 구분해 입을 열면 돌아오는 소리는 “네가 미학을 알아?” 세상에, 암기력만큼은 낙제점을 받는데도 억울할 것 없는 사람한테 미학이라니. 하긴 석학 A와 현자 B의 말꼬리를 잘 따라가야 간신히 결론에 도달하는 표현법이 눈치도 채기 힘든 은유로 가득한 춤과 어쩌면 닮은 꼴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나름 기준이 섰다. 고급스럽게 망가진 눈과 귀에 감동 들어올 자리는 없어졌지만 때로는 미학적 평가에 반한다 해도 ‘관객의 심장을 움켜쥐건, 눈물을 짜내건 ‘소통할 수 있는, 나눌 수 있는 무엇’을 들고 나올 것. 어떤 장르건 내 관객들과 작품을 사갈 프로그래머의 기대에 부응해라.

TV를 켜면 춤은 항상 있었지만 매체가 춤 자체에 주목한 것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다.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연예인들의 춤 경연 프로그램이 공중파에서 방송됐다. 몇 초 단위로 채널이 돌아가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수 많은 케이블 방송들도 저마다 특정 마니아를 겨냥한 프로그램으로 편성을 특화했다. 그 과정에서 찾았을 잠재적 시장가치, 화려한 볼거리를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 모두 지겹도록 따라 하던 노래경연 형식에 얹었다.

‘댄싱 9’, 거침없는 말로 여럿 불편하게 만들던 고약한 버릇이 또 나와 세치 혀로 전사를 자처하다 대놓고 욕먹게 한 프로그램이다. “춤을 아느냐”고 묻는 이에게 “방송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칭찬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 출연한 녀석들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꿈에 날개를 달고,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전에는 다 떨어졌는데 방송출연 후에는 뭘 신청해도 다 붙어요.” 약 1분30초, 그 안에는 왕자와 공주 그리고 슬픈 광대도 있다. 그렇다고 현란하게 눈을 잡던 재주로 무대에서 30분을 채울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자, 봐라. “방송을 보고 반해 팬이 되었다”는 관객이 그와 그녀의 다른 모습에 환호한다.

“지금을 즐겨라.” 하지만 효용을 다한 소모품이 되어 관심이 등돌릴 때 “얘들아 아파하지 말아라. 해가 지면 자러 가자. 아침이면 모두 괜찮아 질 테니.”

김신아 아트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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