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영국 작가 루시 커쿠우드가 쓰고 최용훈 연출로 14일 국내 초연 무대에 오른 연극 ‘차이메리카’가 연일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개혁과 변화, 민주주의와 자유로 포장한 미국의 허상, 그 도도한 역사적 흐름 속에 소외된 개인의 삶을 다루는 작품이다. ‘설마’ 하고 우려하던 반전이 그대로 전개되지만, 신파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25일 객석에선 박수 소리가 유난히 작았는데, 그 반전에 관객들이 눈물을 훔치느라 배우 인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 시내 한복판을 진격 중인 탱크를 한 청년이 온몸으로 막고 선 영화 같은 장면. AP통신이 촬영한 이 사진은 천안문 사태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전 세계에 퍼졌고, 사진 속 인물은 탱크맨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차이메리카’는 이 특종으로 유명해진 사진기자 조 스코필드가 20여년 후 탱크맨을 찾는다는 허구적 설정에서 전개된다.
객석 조명이 꺼지면 무대 위에 20여년 전 탱크맨의 활약을 찍은 영상이 펼쳐진다. 흰 셔츠, 검은 바지 차림의 청년은 양손에 검은 비닐봉지를 쥔 채 악착같이 탱크 앞을 가로 막아서고, 급기야 운전병이 탱크에서 나와 그 청년과 대화를 나눈다. 강렬한 영상에 관객이 정신 팔린 사이 무대 한쪽 벽면이 열리며 이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청년 기자 조가 나타난다. 조가 다른 외신 기자들을 제치고 특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천안문 광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호텔 방을 배정받은 덕분이었다.
중년이 된 조는 기획기사로 탱크맨을 찾으려 하고 베이징 일간지에는 탱크맨의 암호를 담은 듯한 광고가 실린다. 조의 중국인 친구 장린은 탱크맨 왕 펭페이가 뉴욕으로 이주했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탱크맨의 추적 과정은 중국과 미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무대 한 가운데 기둥을 중심으로 조와 장린의 방이 좌우로 나뉘어 한쪽에서는 기사 거래와 섹스가, 다른 쪽에서는 환경파괴와 고문, 언론 통제가 이어진다. 말하자면 그날 탱크맨의 저항은 “민주주의를 경제 기적과 맞바꾼 순간”이자, “한 세대 안에서 기아와 다이어트 약을 경험하는” 21세기 중국의 초고속 압축 성장의 출발점인 셈이다.
이 묵직한 서사를 지루하지 않게 이끌고 가기 위해 중견 연출가 최용훈은 인물의 삶에 집중했다. 조와 사랑에 빠진 다국적기업 경영 컨설턴트 테사 켄트릭의 월가 시위, 탱크맨의 실체를 알게 된 조의 표정 등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스른 각 인물들의 ‘예외적 순간’이 2시간 30분에 걸쳐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5월 1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 (02)708-5001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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