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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고흐의 똥

입력
2015.04.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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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명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만년작 중 ‘꿈’이란 작품이 있다. 여덟 개의 꿈 이야기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그 중 한 에피소드.

장소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갤러리. 일본인 화가가 전시를 보다가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고흐가 걷던 길과 살았던 마을을 이리저리 순례하다 도착한 황금빛 밀밭. 바로 고흐가 그린 ‘까마귀 떼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된 오베르 쉬르 와즈의 그 밀밭이다. 거기서 웬 서양인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고흐 역을 맡은 사람은 미국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하얀 붕대로 양쪽 귀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일본인이 다가가 왜 그렇게 된 거냐 묻는다. 고흐 왈, “어젯밤에 귀를 그리려고 하는데, 잘 안 그려져서 그냥 잘라버렸다네.” 문득 픽, 실소 같은 게 흐른다. 실제로 고흐가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뭐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구로자와 아키라가 고흐를 오마주하는 나름의 유머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가봤던 그곳 풍경이 겹친다. 밀밭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 고흐와 (동생) 테오가 같이 누운 무덤가가 떠오른다. 무슨 충동이 일어 바닥에서 돌을 하나 주워 가방에 넣었었다. 그 돌을 떠올리며 구로사와처럼 어떤 따뜻한 농담을 떠올려본다. “고흐 형님, 이거 형님 똥 말라붙은 거 아니에요?” 안 웃긴가. 웃으라고 한 얘긴 아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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