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70년 동안 오늘의 대한민국이 형성되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는 아마도 한국 모델 혹은 박정희 모델이 성립된 1960, 1970년대가 아닐까 한다.
박정희 모델은 발전국가, 개발독재, 수출주도 성장체제, 재벌지배체제, 중앙집권-수도권 일극 발전체제로 구성된 경제발전모델이었다. 발전국가는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투자조정, 유치산업 보호, 수출촉진, 금융통제 등의 산업정책을 통해 경제발전에 집중하는 국가다. 개발독재는 경제성장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되는 정치적, 사회적 장애요소를 국익과 개발의 명분으로 억압한 독재체제였다.
‘대량생산-고생산성-저임금-대량수출’이란 거시경제적 순환구조를 가지는 수출주도 성장체제, 재벌 대기업에로의 경제적 집중과 재벌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종속적 하청관계를 초래한 재벌지배체제, 권한과 자원을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수도권 집중 아래 수도권만이 유일하게 성장축을 형성하고 있는 중앙집권-수도권 일극 발전체제가 박정희 모델을 구성한 또 다른 요소들이었다.
이러한 박정희 모델은 1987년 시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개발독재체제가 무너지고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발전국가가 후퇴함에 따라 붕괴하였다. 박정희 모델은 민주화와 글로벌화 시대에 지속불가능하였다. 박정희 모델은 긍적정 및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산업정책과 금융통제는 긍정적 유산이고, 독재, 성장지상주의, 재벌체제, 중앙집권-수도권 일극 발전체제는 부정적 유산이다. 민주화 이후 독재는 청산되었으나 성장지상주의, 재벌체제, 수도권 일극 발전체제는 여전하거나 더욱 강화되었다. 산업정책과 금융통제는 점차 폐기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모델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1998~2007년 10년간 민주정부 아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생산적 복지, 동반성장, 지방분권 등 새로운 패러다임이 추진되었다. 이 시기에는 민주화와 자유화가 동시에 진전되고 경제민주주의 요소와 신자유주의 요소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정권 교체 이후 민주화는 위축되고 자유화는 더욱 강화되었다. 박정희 모델 붕괴 이후 2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아직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한국모델이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5년 단위의 정권 교체 과정에서 한 정부가 도입한 새로운 경제모델이 다음 정부에서 폐기되는 과정이 반복되어 뿌리 내릴 수가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도 진보와 중도 보수가 합의하는 한국 모델의 상이 정립되고 이것이 공론이 되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 진영도 경제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공약한 바 있다. 최근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는 양극화를 해결하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진보적 경제정책을 주장한 바도 있다. 진보 내에서도 성장, 효율성, 혁신을 중시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박정희 모델의 긍정적 유산인 산업정책과 금융통제를 새로운 형태로 계승하고 부정적 유산인 성장지상주의, 재벌지배체제, 중앙집권-수도권 일극 발전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한국 모델’을 정립하기 위한 보수-진보간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정권이 교체되어도 이 합의에 기초한 새로운 한국 모델의 근간은 유지되어야 한다. 보수정부에서는 그 발전 모델의 보수 버전이, 진보정부에서는 그 진보 버전이 출현하더라도 말이다.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양대 문제에 직면한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한국 모델인 ‘집권형 발전국가’를 새로운 한국 모델인 ‘분권형 복지국가’로 개조해야 한다. 분권형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올려져야 할 의제로는 지방분권 국가 건설, 노동시장 유연안전성 실현, 고부담-고복지 체제 구축,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실현, 소득 주도 성장체제 확립을 들 수 있다. 해방 70주년을 맞아 이러한 ‘새로운 한국 모델’인 ‘분권형 복지국가’ 의제가 최우선 국가의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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