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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먹고 습격하고… 안전지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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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먹고 습격하고… 안전지대가 없다

입력
2015.04.2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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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진 서식지ㆍ부족한 먹이 탓, 서울에만 작년 199건 신고 접수

야산 중턱 파헤친 묘 부지기수, 온갖 퇴치 방법도 일시적 방편

지난 13일 기자가 들렀던 경기 포천시 내촌면 내2리. 87세대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 고령의 주민들이 민가에 출몰하는 멧돼지의 위협에 떨고 있었다. 813m 높이의 주금산에서 이어진 마을 뒷산뿐만 아니라 텃밭에는 발자국 등 멧돼지 흔적이 기자의 눈에도 쉽게 들어왔다.

인명피해와 도심출몰

40년 넘게 이 마을에서 산 조경원(66)씨는 “밤새 집 바로 옆 텃밭에 심은 땅콩을 멧돼지가 다 파헤쳐 놨다”며 “야밤에 마을까지 내려와 헤집고 다녔을 걸 생각하면 무서워서 집 밖에 나가지를 못한다”고 했다. 김명중(65)씨는 “요즘 새끼까지 대동하고 무리가 내려와서 밤마다 마을 길을 따라 돌아다닌다”며 “해가 지면 무서워서 밖엘 나가질 못한다”고 말했다. 인구 대부분이 노인층이라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멧돼지 피해는 농작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무리를 짓고 다니면서 인간을 공격할 수 있는데다 살인무기나 다름없는 송곳니에 인명피해가 전국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난다. 2013년 멧돼지가 도심인 포천시청 주변에 나타나 시민 5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적이 있다. 2011년엔 경남 창원에서 올무에 걸린 멧돼지를 잡는 과정에 마을 주민이 물려 죽은 일도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4년간 인명피해가 59건이 났다. 좁아진 서식지와 개체 수 급증으로 인해 부족해진 먹이 때문에 멧돼지의 도심 출몰은 갈수록 늘고 있다. 서울시에만 지난해 199건의 출몰 신고가 접수됐다. 2013년(135건)보다 47% 급증했다. 올 들어서도 서울 강북구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 대형 멧돼지 두 마리가 들어왔고, 은평구 한 아파트 단지에도 멧돼지가 나타났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서울의 멧돼지 위치추적을 한 결과에 따르면 서식지는 북한산의 6, 7능선 아래에 있지만 휴식처나 번식지가 민가와 불과 41~363m 거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목이 우거져 사람이 닿지 않는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 5~10일 정도 머무르는 게 관찰됐다. 민가 주변 농작물이나 음식물 쓰레기에 이끌린 도심 출몰이 잦으면 잦을 수록 인명피해 가능성도 늘어난다.

분묘 훼손

주민들이 멧돼지 피해가 심각하다고 느끼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분묘 훼손이다. 조상숭배 전통이 깊은 우리 문화에서 후손이 여러 모로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고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내촌면 마을에서 불과 100m 거리의 야산 중턱 분묘도 군데군데 멧돼지가 파헤친 상흔으로 엉망이었다. 잡식성인 멧돼지는 지렁이나 굼벵이 등 동물성 먹이를 얻기 위해 철을 가리지 않고 무덤을 파헤친다. 관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무덤을 깊게 파헤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서 아예 비석만 세워 평장(平葬)을 한 곳도 있다. 전남 고흥군 한 마을에서는 묘 주변과 입구는 물론 봉분까지 회색 콘크리트로 덮은 ‘콘크리트묘’가 등장했다. 인조잔디로 봉분을 덮은 묘지도 있다. 경기 구리에서 묘지관리업체를 운영하는 김태흠 대표는 “멧돼지가 봉분 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둘레석을 높이는 방법이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멧돼지가 기피하는 냄새 나는 농약을 사다 뿌리거나 사람 머리카락이나 동물원에서 얻어온 호랑이 똥을 묘지 주변에 뿌리는 식의 갖가지 퇴치 방법을 쓰고 있지만 일시적인 방편밖에 되지 않아 분묘 훼손 피해가 줄지 않는다. 양종국 야생생물관리협회 순천지회 전무이사는 “곳곳에 묘지가 파헤쳐지지 않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뒤쳐져 있는 멧돼지의 생태와 피해방지 대책에 관한 연구가 시급하다”며 “실효성 있는 피해방지 대책을 위해서 생태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천ㆍ순천=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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