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근무제 실시하는 '한국 IBM'
근무시간 조절해 육아 참여 늘어
지난해까지 박준우(44) 한국IBM 재무팀 실장의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올해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침마다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줘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유연근무제로 출근과 퇴근 시간을 1시간씩 늦출 수 있어 가능했다. 박 실장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선생님과 이야기도 나누는 등 다른 아빠들이 못하는 부분까지 챙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4일 여성가족부가 ‘일하는 아빠의 일ㆍ가정 양립’을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홍순옥 한국IBM 인사부 실장은 유연근무제가 일에 활력을 줘 남성 직원들의 일에 대한 만족도나 업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IBM은 모든 직원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근무할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모토 아래 유연근무제를 적극 실시하고 있다. 직원들은 업무 특성과 본인의 필요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하루 4~5시간만 근무하는 파트타임이나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제, 일의 양에 따라 근무시간을 조절하는 집약근무제 등도 요구대로 고를 수 있다. 휴직만 아니라면 인사부 승인이나 관리자의 허락도 필요 없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IBM의 최근 3년 간 육아휴직 이용자 중 남성의 비율은 15%나 된다. 4.5%에 불과한 우리나라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보다 3배 이상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은 여전히 아빠들을 육아에서 소외시키고 있다. 지난해 영유아기ㆍ초등생 자녀를 둔 남성 직장인 1,000명의 설문을 토대로 ‘남성의 일ㆍ가정 양립 현황과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홍승아 연구위원은 “육아에 참여하고 싶은 남성 직장인은 늘고 있지만 현실에선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그는 “남성 직장인의 63.4%가 일과 가정생활의 불균형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이와 놀아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아빠는 피곤하다. 시간부족, 육체피로, 여유부족 등을 이유로 양육 참여를 꺼린다는 아빠가 83.2%나 됐다.
물리적으로 놀아줄 시간이 없는 아빠가 대부분으로 정시 퇴근한다는 답은 27.5%에 그쳤다. 주 1,2회 야근은 38%, 주 3,4회 야근은 20.5%였으며, 거의 매일 야근한다는 응답도 14%나 됐다. 하루 근무시간은 9시간이 넘었지만, 퇴근해 자녀와 보내는 시간은 1.65시간에 불과했다.
일하는 아빠의 3.3%만이 가정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지만, 실제로는 전체의 82.4%가 현재 가정보다 일에 치중해 있었다. 남성 직장인 절반 이상(57.2%)이 자녀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과중한 업무, 장시간 근무, 직장상사나 동료와의 관계 때문에 양육에 어려움이 크다는 응답도 51.3%에 달했다.
남성 10명 중 6명이 향후 육아휴직 의사가 있다고 답할 만큼 인식이 달라졌지만, 아직까지 당당히 육아휴직원을 제출할 수 있는 직장인은 많지 않다. 남성 3분의 2 가량이 육아휴직 장애 요인으로 ‘제도적으로 불가능’(34.4%) 하거나 ‘직장 분위기상 어렵다’(31.4%)는 것을 꼽았다. ‘수입 감소 등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안 된다’는 응답은 11.5%에 그쳤다.
홍 연구위원은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를 써서라도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하고 싶다는 남성이 많아졌으나 경직된 직장문화에 막혀있다”며 “아빠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제도적 강제장치 등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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