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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대통령에게 ‘안식月’이라도

입력
2015.04.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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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난국 초래한 儀典형 통치스타일

단상 내려와 국민과 눈높이 맞추길

어떻게든 전면 변화 계기 만들어야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오후(현지시간) 중남미 마지막 순방국인 브라질 브라질리아 국제공항에 도착, 전용기에서 내리며 우산을 전달 받고 있다. 브라질리아(브라질)=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오후(현지시간) 중남미 마지막 순방국인 브라질 브라질리아 국제공항에 도착, 전용기에서 내리며 우산을 전달 받고 있다. 브라질리아(브라질)=연합뉴스

사실 총리가 이름만큼 대단한 자리는 아니다. ‘대독’‘방탄’ 등으로 비꼬지만 헌법이 규정한 권한도 그 정도다. 내각 통할도 대통령 보좌역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출국 뒤 이완구 총리가 “흔들림 없이 챙기겠다”던 국정도 대부분 행사 대리참석이나 국무회의 사회였다. 책임총리제를 표방한 참여정부의 고건, 이해찬이 되려 예외적이다.

현 정부 들어 거듭된 낙마로 총리 인선의 중요성들을 얘기하지만 다 부질없다는 뜻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특히 박근혜 같은 권위형 정부에서 국가운영의 독립변수는 대통령뿐이다. 다른 누구도 이 난국을 대신 풀 수 없다.

나올 얘긴 다 나왔다. 주류언론에서도 박 대통령의 통치자격을 시비하기 시작했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차마 대놓고 못했을 뿐 ‘그만두라’다. 그에겐 영남보수 기반의 콘크리트지지 30%가 있다 하나 온전한 개인지지로 보긴 어렵다. 아버지 향수와 그 딸에 대한 연민의 정서다. 고착화하는 30%대 지지율(1월엔 20%대)은 그래서 박근혜 개인에 대한 기대가 거의 소멸된 상태로 봐도 무방하다.

헌데 어쩌랴. 3년을 더 이 선장으로 운항해야 한다. 그것도 경제침체, 성장동력 소진, 복지갈등, 남북긴장, 안보위협, 꼬인 동북아정세 등 일찍이 없던 격랑의 바다다. 조타기능을 잃은 표류의 결과는 침몰이거나 운 좋아야 만신창이다. 그러니 선장이 정신 차리길 다시 절박하게 주문할 수밖에 없다.

원인은 복합적이나, 외양으로 나타나는 의전(儀典)형 통치스타일이 많은 걸 설명한다. 권위와 예우로 받쳐진 단상에 높직이 앉아 다들 아는 원론을 칙지(勅旨)로 신민들에게 내려 보내는. 창조경제, 국민행복, 문화융성 등을 죽 나열한 취임사부터 그랬다. 실제로 국군의 날 사열 받을 때 그의 표정은 가장 흡족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의 당선에 ‘여성’도 적잖이 기여했다. 삶의 현장에서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아가며 살뜰히 챙기는 이미지로. 그의 어머니가 보인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딸은 가신에 싸인 단상에서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고질적 불통도, 남 애기하듯 책임을 비껴가는 ‘유체이탈 화법’도 마찬가지다. 다 구체적 현실과 떨어진 공감능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장점도 물론 여럿이다. 자타 인정하는 애국심, 참모들도 스케줄을 버거워하는 근면성, 천막당사가 대변하는 승부사적 솜씨는 특출했다. 그러나 구현할 철학과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애국심은 허망하고, 실질과 유리된 근면은 어긋난 자기확신만 강화한다. 무엇보다 승부근성은 통합의 대통령으로선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었다. 불행히도 그는 생각 다른 국민과 여전히 승부를 겨루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권위와 예우, 위계의식에 갇힌 의전형 통치스타일과 연관된 것들이다.

지난 얘기는 관두자. 이제라도 권위적 선민의식을 털어내고 단상에서 내려와야 하는데, 기대하기 쉽지 않다. 공주로 자라 20대에 퍼스트레이디를 한 그에게 단상의 삶은 체질이다. 촌음이 부족한 청와대에선 진지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어렵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박 대통령이 돌아오면 보름에서 한달 쯤 모든 걸 제쳐둔 휴가를 갖기 권한다. 대통령이라고 안식월 갖지 말란 법도 없다. 오바마 대통령도 6년 재임에 20여 차례 총 넉 달이 넘는 휴가를 보냈다. 중동서 폭탄이 터지고, 우크라이나가 풍전등화 상황에서도. 부시는 그보다 두 배 더 쉬었다.

이제껏 과오를 되풀이 않으려면 통치인식과 스타일을 확 바꿔야 하고, 그러려면 허심탄회한 자신과의 마주보기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국가개조 따위를 되뇌는 단상의 승부사가 아니라, 질퍽한 흙바닥을 마다 않는 눈높이 맞춘 관리자로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끔찍한 퇴진론도 안 듣고, 최소한 참담한 실패는 면할 것이다.

비아냥이 아니니 오해 말기 바란다. 박근혜 정권이 어떻게든 기사회생하길 바라는 고언이다. 그가 못마땅해도 ‘초가삼간 태워도 빈대 죽는 게 시원하다’는 식의 무책임한 적개엔 동의할 수 없으므로. 그러니 좀 쉬면서 바꿔 보시라.

주필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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