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 스트레스에, 이혼 급증에… 자살로 내몰리는 소아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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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 스트레스에, 이혼 급증에… 자살로 내몰리는 소아청소년들

입력
2015.04.2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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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도 영어·특목고 입시 전쟁

성적부진 중압감에 극단 선택 많아

맞벌이·이혼 가정 늘면서 소통 부재

교육부-여가부 업무 나눠져 있어

원인 분석은커녕 대책 마련도 뒷짐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전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는 데도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 정부가 소아청소년 자살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배재정 위원(새정치민주연합ㆍ비례대표)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전국 16개 시도 초중고생 자살 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 9월까지 최근 5년 간 초중고생 6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등학생이 409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학생 204명, 초등학생 17명이었다.

‘대한민국 사교육 일번지’ 서울 대치동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A 양 사례는 우리의 일그러진 교육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초등 3학생인 A 양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영어’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다녔던 영어학원은 수준이 낮아 시험만 봤다 하면 100점을 받았지만 올 초 영어학원을 옮기고 난 뒤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100점을 받으면 용돈을 받아 과자나 음료수를 사먹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마저 끊기고 나니 재미가 없어졌다. 함께 학원을 옮긴 초등학교 4학년 언니는 지난 주 100점을 받아 용돈을 챙겼다. 언니는 학원에서 내준 영어숙제를 하느라 자정을 넘긴 시간에 잠을 잔다고 한다. 학원진도도 따라가지 못하고 집에서 인정도 받지 못한 A양은 요즘 말수가 적어지고 시험성적 때문에 엄마와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전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을 선택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맞벌이ㆍ이혼율 증가 속 방치된 탓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A 양처럼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평소보다 말수가 적어지고 부모와 마찰이 생기면 충동적으로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홍현주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초등생의 경우 성인에 비해 우울증이 작용하는 비율이 낮지만 부모에게 성적부진 등으로 야단을 맞은 이후 등 경미한 요인에 의해 자살을 선택한다”며 “초기에 아이가 신호를 보냈을 때 개입을 하면 자살을 방지할 수 있는데 부모나 교사들이 아이들이 느꼈을 심리적 어려움을 알아채지 못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맞벌이 가정, 이혼율 급증도 소아청소년의 자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고 이혼율도 높아지면서 불안정한 가정환경에서 양육되고 있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며 “이런 경우 아이가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고, 부모도 아이의 상태를 잘 알지 못해 조기개입 기회를 놓쳐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홍 교수는 “경제적으로 윤택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중 초등학교 5,6학년부터 특목고 입시준비에 들어가는데 이로 인해 아이들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이 크다”며 “겉으로는 학업에 열중하는 것 같지만 자존감과 자신감이 결여된 아이들도 많아 학업스트레스 등이 지속되면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자살을 자신을 괴롭힌 대상에 대한 복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도 문제다. 자살을 선택한 소아청소년 중에는 유서에 자신을 힘들게 한 대상을 적시해 이들이 자신의 죽음과 관련 민ㆍ형사적 처벌을 받길 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수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언론에서 청소년 자살을 크게 다루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부각시켜 상대방을 사회에서 매장시키려는 심리도 일정 부분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팔짱 낀 정부, 원인 분석 통계마저 없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자살이 소아청소년 사망원인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소아청소년 자살원인에 대한 조사와 분석이 이뤄지지 않는 등 소아청소년 자살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이는 청소년 관련 정책이 학교 내 청소년은 교육부가, 학교 밖 청소년은 여성가족부로 업무가 나뉘어져 있는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교육부는 교육이 주 업무다 보니 청소년 자살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고, 여성가족부는 최근에서야 학교 밖 청소년 관련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노인자살의 경우에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에 기대를 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권용실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세 이상 성인 사망자 중 자살자 비율이 5.4%에 불과하지만 소아청소년의 자살자 비율은 전체 사망의 28.4%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며 “소아청소년 자살 원인과 문제를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자살로 사망한 소아청소년의 절반 이상이 투신을 선택하는 등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수정 부센터장은 “학교 밖 청소년의 자살도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학교 밖 청소년의 자살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 9월까지 최근 5년 간 자살한 초등생은 17명이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을 합한 자살자는 같은 기간 1,2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소아청소년 자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살 청소년들의 자살 이전 심리행동 양상 및 변화 상태를 분석하는 심리적 부검이 실시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하지만 ‘부검’이라는 용어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인해 유가족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홍현주 교수는 “심리적 부검은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왜 아이가 그 길을 선택해야 했는지 이해하는 과정”이라며 “부모나 학교에서는 아이를 잃고 나면 엄청난 충격 속에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주변을 원망하기 쉬운데, 심리적 부검을 통해 떠난 아이에 대한 정리와 치유가 가능해지므로 이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청소년 관련 NGO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가 게이트키퍼(생명사랑지킴이) 교육 등을 강화하는 등 나름 소아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초등생 때부터 입시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교육현실을 개선하지 않으면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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