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을 서재로 만드는 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가족 공동의 공간으로 인식된 거실에 책장을 짜넣고 마치 북 카페처럼 소파 대신 긴 탁자와 의자를 배치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다른 방에 놓거나 아예 치우는 경우도 많다. 알고 지내는 인테리어 전문가의 말로는 실제로 지난 몇 년 사이 이런 의뢰가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큰 관심을 가지는 고객층은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란다.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키워주려는 뜻이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집으로 말하자면 거실이 서재화된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최근의 유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결정이었다. 이미 방 하나를 서재로 쓰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책 수납이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아이들과도 하등 상관이 없었다. 미안하다는 수식을 자연스레 앞에 붙이게 되는 건 얼마 전 우연히 방문했던 아이 친구 집의 기억이 강렬해서다. 평범한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자 온통 책으로 뒤덮인 거실이 나왔다. 그럼에도 아이 어머니에게 어떤 책을 좋아하시냐고 물을 수 없었는데, 한 치 여백도 없이 책장을 빼곡히 채운 그 많은 책들 중 어른 책은 단 한 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색깔별로 가지런히 질서정연하게 꽂힌 그 어린이 책 대부분은 유아용 전집이었다.
우리 집 애들 책장이 떠올랐다. 전집이라면 물려받은 세계창작동화 한 질과 자연관찰그림책 한 질이 전부이고 그마저도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있다. 그 외에는 아무 계획 없이 그때 그때 사 준 단행본들이 중구난방으로 꽂혀있다. 주로 내 책을 잔뜩 주문할 때 애들 책도 덤으로 몇 권 섞어 주문하거나, 가족 나들이 겸 서점에 갔을 때 애들더러 직접 재미나 보이는 책들을 고르게 한 것이 다였다. 당연히 계통도 질서도 없다. 목적성과 방향성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어쩐지 찔리는 마음에 본격적으로 그 세계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유아 전집의 세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해 보였다. 나로서는 이름을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어린이전집 전문 출판사들의 숫자가 아주 많았고 각 회사마다 다양한 시리즈를 쏟아내고 있었다. 좀 더 정리해보니 끝 모를 바다와 같던 그 세계에 대한 가닥이 잡혔다. 아이의 나이에 따라 전집 구매에 관한 일반적인 패턴이 있었던 것이다. 카테고리가 다양한 대신 비교적 명확했다. 첫 아기전집, 자연관찰, 생활동화, 세계창작, 한국전래, 세계명작, 수학동화, 경제동화, 철학동화, 원리과학, 백과사전…. 여기다 영어책들까지 포함시켜 구색을 갖추려면 아무리 넓은 서재라도 모자라는 게 당연하다.
나의 공간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온 가족의 공간인 거실 서재가 오로지 아이의 책만으로 둘러싸인다면 그 공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가족구성원을 소외시키는 공간이 된다. 책으로 한다는 ‘책 육아’, 책을 많이 읽혀 후천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독서영재’ 같은 조합의 말들이 더 이상 낯설게 다가오지만은 않는 시대다. 아이에게 그렇게 열심히 책을 사주고 책을 읽히는 부모는 결국 그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일까. 당연히 잘 자라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잘 자란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결국 현대의 많은 어린이 관련 산업 뒤에는 불안감을 자극하는 상술이 있다. 지금 이 전집을 사주지 않으면, 지금 이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지금 이렇게 해 주지 않으면 당신의 아이는 뒤처지고 말 거라는 은밀한 전언이 육아 시장 불안 마케팅의 핵심이다. 그 모든 일어나지 않은 일이 부모 탓이라는 데 넘어가지 않을 간 큰 자 누구인가. 그것을 다 알면서도 구성 좋은 세계창작동화 전집이 있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지는 나는 아직도 멀었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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