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고로 15만명 피난… 교통사고와 비교는 어용학자 상투어
평화 이용 연상시키는 원전보다 핵발전소라고 제대로 불러야"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원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루키는 최근까지 운영한 독자와의 대화 사이트에서 38세 남성 독자에게 원전 관련 질문을 받았다. 이 남성은 ‘원전 NO!에 의문을 갖고 있다’는 제목으로 이렇게 질문했다.
“원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친구를 숨지게 하고 나 자신도 다쳤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다든지 한 자동차회사쪽이 몸으로 느끼는 위험으로 말한다면 더 하다. (자동차 사고로는 연간 5,000명 가까이 숨지는 것이니)앞으로 슈퍼에너지가 발견돼 원전보다 효율이 높지만 매우 위험한 그런 에너지가 나온다면 그건 하지 말고 원전으로 하자 같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상대적인 문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원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찬성파’의 이런 논리에 대해 하루키는 교통사고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걸 전제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따라 고향 땅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됐던 사람들의 숫자는 약 15만명”이라며 “단위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하루키는 이어 “사망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대단하지 않다”는 논리에 의문을 제기했다. “만일 당신의 가족이 갑자기 정부의 통지에 따라 “내일부터 집을 버리고 근처로 옮겨가라”고 하면 어떻겠나.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라. 원전을 인정할지 아닐지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포괄적인 문제다. 기본적으로 단발성인 교통사고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후쿠시마의 비극은 원전 재가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다시 어딘가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다.”
하루키의 이 대답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사망자와 피난자를 비교하는 건 이상하다” “원전도 자동차도 절대로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경제적인 관점을 무시할 수 없는 거다” 같은 비난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키는 이에 지지 않고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5,000명에 비한다면 후쿠시마 사고 정도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정부나 전력회사의 입김이 미친 ‘어용학자’ 또는 ‘어용지식인’이 애용하는 상투어”라며 “비교 대상이 아닌 것을 비교하는 숫자놀음이며 논리 바꿔치기다”고 비판했다. 덧붙여 “효율이란 건 도대체 무엇이냐”며 “15만명의 인생을 짓밟고 난 뒤 효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상대적인 문제라며 무시해도 되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하루키는 비슷한 이야기를 일본 대지진 직후인 2011년 6월 스페인 카탈루냐국제상 수상식 연설에서도 한 적이 있다. “일본인은 두 번째로 커다란 핵 피해를 봤다. 그러나 이번에는 누가 핵폭탄을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잘못해 땅을 오염시키고 생활을 파괴한 것이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난 걸까. 대답은 간단하다. ‘효율’이다. 원자로는 효율이 좋은 발전시스템이라고 전력회사는 주장한다. 이익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거다. 또 일본 정부는 오일 쇼크 이후 원유 공급의 안정성에 의문을 품고 원전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전력회사는 막대한 돈을 홍보비로 뿌려 언론을 매수하고 원전은 안전하다는 환상을 심어왔다. 그러면서 원전을 우려하는 사람을 향해서는 그럼 당신은 전기가 부족해도 좋나요. 여름에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어도 괜찮나요 라고 협박했다.” 하루키는 원전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비현실적인 몽상가”라는 라벨을 붙였다며 “안전하고 효율적이어야 하는 원전은 지금 지옥의 뚜껑을 연 것 같은 비참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키는 최근 교도통신 인터뷰에서도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라 ‘핵발전소’라고 부르자는 제안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뉴클리어 플랜트(nuclear plant)’는 원래 ‘원자력발전소’가 아니라 ‘핵발전소’다. ‘뉴클리어=핵’이니까. 원자력은 ‘아토믹 파워(atomic power)’다. 핵이 핵폭탄을 연상시키고 원자력은 평화이용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원자력발전소’라고 말을 바꿔 부르는 거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핵발전소’ ‘핵전’이라고 부르는게 어떤가 하는 것이 나의 제안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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