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 박주희기자
‘스토커 피해자를 구한 112직원의 기지’. 서울경찰청이 22일 오전 발송한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2년 전 한 병원에서 50대 남성 A씨와 30대 여성 B씨가 직원과 환자로 만났다. 이후 A씨는 B씨를 줄곧 스토킹했고, 얼마 전 B씨 집에 무단 침입해 협박을 했다. 신고 전화를 받은 112 직원이 B씨의 동생으로 가장하는 기지를 발휘해 별다른 피해 없이 A씨를 신속히 검거했다.” 전형적인 미담 기사였다.
하지만 자화자찬으로 각색된 자료는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거짓으로 드러났다. 애초 두 사람은 내연관계이며 무단침입도 실상은 A씨가 B씨의 허락을 받고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를 담당한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A씨는 혐의가 없어 조사를 받고 석방됐다”고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실 해당 자료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통상 보도자료는 게재 전 미리 보도시점을 조율하고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하는 게 관례지만, 이 자료는 어찌된 영문인지 당일 오전 뿌려져 서두른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보니 스토커라는 A씨가 “과거 B씨의 이삿짐을 날라줬다”는 앞뒤가 맞지 않은 내용도 등장했다.
무리한 실적 홍보 욕심에 망신을 자초했는데도 경찰의 대응은 더 황당하다. 논란이 일자 경찰은 이미 무혐의 처분한 A씨를 재조사해 “협박 혐의 유무를 밝히겠다”고 했다. 풀어줄 때는 언제고, 다시 불러 조사한다는 얘기는 또 뭔가. 상급기관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 애먼 시민이라도 붙들고 늘어지겠다는 심보라면 경찰이 ‘민생 치안의 최후 보루’라는 수사는 이제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보자. 서울경찰청은 뭐가 급해 일선서의 수사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사실관계도 맞지 않은 보도자료를 냈을까. 마침 경찰은 집회 참가자에 대한 경찰 간부의 잇단 막말 파문과 차벽으로 대표되는 공권력 과잉대응 논란으로 코너에 몰리고 있었다. 무리한 112직원 미담 홍보가 비난 여론을 덮기 위해 경찰 지휘부가 무리수를 둔 것이라는 일각의 의심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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