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약세 상당기간 지속 전망 많아
내년말 800원까지 추락 예상도, 속도는 지금보다 완화에 무게
우리 기업들에 치명상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나쁜 변수엔 이견 없어
돈을 무제한 찍어대는 아베노믹스 탓에 엔저(엔화 약세)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굳어졌다. 불과 3년 전 100엔 가치가 1,500원을 넘었는데, 이제 900원 아래로 떨어졌으니 속도가 엄청나다. 수출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국에 엔저는 국민경제 기반을 뒤흔들 거대 변수다. 내수 기반이 취약한 경제구조에서 유일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마저 무너질 경우 우리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서 탈출하기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엔저는 이미 대세, 800원 예상까지
가장 큰 관심은 엔화 약세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얼마나 빨리 진행될지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 추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 전망한다. 일본은행(BOJ)이 하반기 추가 양적완화에 나서고, 반대로 미국은 하반기 중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이 돈을 풀고 미국이 돈줄을 죄면 엔화 가치가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원화 역시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면 약세를 보이겠지만, 엔화에 비해 절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일본처럼 금리인하 등 통화 완화의 여지가 많지 않은데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감소하면서 발생하는 경상수지의 불황형 흑자로 국내로 유입되는 달러가 많은 탓이다.
허진욱 삼성증권 거시경제팀장은 “엔화는 10% 정도 더 가치가 떨어져 내년 말에는 100엔당 800원까지 내려앉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고, 서대일 대우증권 수석연구원도 “엔화 약세는 1, 2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외환당국이 손 쓸 수단도 많지는 않다. “한국은행이 엔저에 관심을 두고 있어 이 상황을 용인하지는 않을 것”(김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이란 관측도 나오지만, 속도 조절 이상의 개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엔화 가치 하락 속도가 지금처럼 가파르지는 않을 거란 예상이 많다. 민경섭 현대증권 연구원은 “엔저가 지속되긴 하겠지만 지금보다 빠르진 않을 것”이라고 했고,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단기간에 850원까지 내려앉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 타격은
엔저현상이 수출에 전반적으로 나쁜 변수라는데 이견은 없다. 국제시장에서 경쟁 중인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 똑같이 달러 기준으로 물건을 팔 때, 엔화가 약하면 일본기업이 달러 표시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영향력이 감내할 수준인지, 수출기업 줄도산으로 이어질 만한 것인지 여부다.
과거와 달리 엔저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해석이 점점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허진욱 팀장은 “일본기업은 엔저에서 가격경쟁력이 생겼음에도 가격을 낮추지 않고 이익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 중”이라며 치명적 타격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민경섭 연구위원 역시 “100엔당 900원대 중반 환율이 상당기간 계속됐지만 수출이 나빠졌다는 증거는 없다. 치명적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수출이 계속 내리막을 걷는 등 수출 전선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라는 점에서 엔저의 가속화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유나 동부증권 연구원은 “일본 기업들이 엔화 약세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해 올해는 한국기업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고, 서대일 수석연구원도 “지금은 해외 수요가 정체돼 있어 가격경쟁력 악화가 곧바로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우려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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