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집을 나서 버스정류장까지 5개 아파트단지를 거쳐 간다. 빨리 걸어도 20~25분 걸리는 거리다. 한여름과 한겨울은 힘들지만 요즘은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다투어 피는 꽃과 새로 돋는 잎들에 눈길을 주며 걸으니 지루할 겨를이 없다. 아파트 단지마다 정원과 화단을 잘 가꾸어 놓았다. 매화 살구 앵두꽃에 이어 벚꽃이 폭죽 터지듯 한꺼번에 피었다가 순식간에 졌다. 흰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벚꽃잎을 아쉬워할 새도 없이 박태기 라일락 겹복사꽃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낸다.
▦ 지금은 철쭉이 한창이다. 수십 가지 개량종 꽃이 형형색색 피고 있다. 단지 산책길 양쪽에 그득한 철쭉 사이를 의장대 사열하듯 보무도 당당하게 걷는다. 번식철을 맞아 한층 차져진 직박구리 박새 무리 울음소리를 군악대 연주 삼아서다. 조경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조경수와 꽃 종류도 다양해져서 일일이 이름을 알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도 이름을 알고 불러주면 꽃들이 훨씬 자태 곱게 다가온다. 물론 어떤 꽃 이름을 모른다고 스트레스 받을 이유는 없다. 그냥 보고 즐겨도 충분하다. 거리에서 마주친 미인의 이름을 굳이 알 필요 없듯이.
▦ 출근길에는 사람이 애써 가꾸지 않는 야생화들도 많이 만난다. 어제는 올 봄 들어 처음 인도 가장자리에 핀 선씀바귀 노란꽃을 보았다. 보도블록 틈을 비집고 꽃대를 곧추세워 꽃을 피워낸 모습이 장하다. 그 옆엔 이른 봄부터 제비꽃과 민들레 꽃이 피고지기를 거듭하고 있다. 아파트 화단에도 정원사의 호미 끝을 용케 피해 살아 남은 잡초들이 무성하게 꽃을 피운다. 꽃마리 꽃다지 별꽃 같은 무리들이다. 가꾼 화려한 꽃에 비하면 형편 없이 초라하지만 들여다 볼수록 마음이 끌리고, 그 질긴 생명력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 문득 출근길은 꽃이 없어도 꽃길이란 생각이 스친다. 출근하는 길은 일터로 가는 길이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시인의 시‘꽃자리’의 한 구절처럼 힘들고 스트레스 많은 일터, 일자리라도 꽃자리다. 일자리는 번식활동과 함께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 활동인 경제활동의 터전이다. 원하는 모든 이에게 마땅히 꽃자리 일자리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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