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서 맡게 되는 배역이 달라지잖아요. 배우로서 제가 갖는 고민 비슷한 걸 중년의 (화가)마크 로스코도 하더라고요. 학교(수원여대)에서 십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느끼는 세대차도 작품 속 대사에 나타나고요. 제 고민의 많은 부분이 작품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텔레비전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배우 정보석(53)이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 역할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내달 3일부터 31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선보이는 연극 ‘레드’가 변신의 장이다. 2013년 연극 ‘햄릿’ 이후 2년 만의 무대 복귀다.
‘레드’는 다양한 붉은색의 향연으로 추상표현주의 시대의 절정을 보여준 로스코와 가상인물인 조수 켄의 대화만으로 구성된 2인극이다. 니체와 융, 프로이트 등에 천착하며 고독 속에 작업했던 로스코가 뉴욕 최고급 레스토랑 포시즌에 걸릴 벽화를 의뢰 받아 작업한 후 계약을 파기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2010년 제64회 토니상 최다 수상작으로 이듬해 국내 초연했다. 2013년 앙코르공연에 이어 세 번째로 관객을 만나게 됐다.
23일 오전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정보석은 “2011년 초연 첫날 작품을 보고 기획사 대표에게 먼저 출연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어제부터 켄을 연기할 배우 박정복과 저희 집에서 합숙도 시작했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보석은 “로스코를 한 마디로 말하면 미친놈”이라고 단언했다. “어느 한 분야에 광적으로 천착해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해내고 예술로 표현한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본을 받고 감당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며 “로스코가 사람 잡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도 말했다.
로스코와 켄은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당대 미술계의 흐름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정보석은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로스코 평전부터 철학자 강신주씨가 쓴 ‘마크 로스코’, 니체의 ‘비극의 탄생’까지 찾아 읽었다. 정보석은 “젊었을 때 이 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할리우드에 갔을 것”이라고 웃으면 말했다. 50대 중반 로스코가 콧수염을 기른 모습에서 착안해 정보석도 며칠 전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정보석은 30년간 드라마와 영화 촬영 틈틈이 연극 무대에 섰다. “연기의 부족한 부분을 찾고 부족한 점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 그는 “무대에서 2시간 집중해 감정을 끌어낼 때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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