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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개성공단 협상으로 본 남북 '밀당의 기술'

입력
2015.04.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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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남북이 갈등하는 가운데 신한용 개성공단 기업협회 부회장 등 입주기업 대표들이 2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입경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개성공단을 방문해 북한 근로자 임금 지급 현황을 점검하고 돌아왔다. 연합뉴스
개성공단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남북이 갈등하는 가운데 신한용 개성공단 기업협회 부회장 등 입주기업 대표들이 2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입경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개성공단을 방문해 북한 근로자 임금 지급 현황을 점검하고 돌아왔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오후 6시 서울정부청사 6층 통일부 기자실. 이날은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의 3월분 임금 지급 마감일 당일이었던 만큼 기자들은 하루 종일 북녘 땅에 위치한 개성공단만 바라보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마침 이날 오전 개성공단을 방문해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관계자를 만나고 돌아온 입주 기업 대표들로부터 “북한이 일주일 임금 지급 기한을 연장해줬다”는 소식이 오후 5시께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통일부는 이에 대해 즉각 “확정된 바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직접 북측 인사를 만난 기업 대표가 확인 해준 내용이라고 해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날 만남에는 우리측 개성공단 관리위 인사들이 따로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북측 관계자를 만난 기업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북한 총국 협력부장이 날짜까지 24일로 박아서 말해줬다”고 하고, 통일부는 별다른 배경 설명 없이 무조건 “확정된 바 없다”는 정 반대의 소리만 내놨습니다.

북한이 정부와 기업에 서로 다른 얘기를 전달했거나, 아니면 기업이 북한으로부터 의사를 전달 받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는데, 기업 측은 분명히 날짜까지 들었다고 하니 북한의 말 바꾸기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실제 우리 측 관리위가 기업인들로부터 임금 지급 기한 연장 소식을 듣고, 북측 총국에 사실 여부를 물으니, “요청하면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통일부는 “확정된 바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던 것입니다.

北 우리 기업과 정부 갈등 부추기는 고도의 이중 전략

그렇다면 북한은 왜, 우리 기업인들과 정부에게 서로 다른 말을 한 것 일까요.

일단 우리 정부에게 공을 떠넘기며 양보를 한번 더 이끌어내려는 속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업 앞에선 화끈하게 연장해주겠다고 해놓고, 정부 앞에선 너희가 요청해오면 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취하며, 기업들로 하여금 우리 정부를 압박할 수 밖에 없는 시나리오를 그린 겁니다.

정부의 요청을 한번 들어주는 것으로 생색을 내놓고 나중에 더 큰 걸 요구하며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겁니다.

더 본질적으론 이른바 기업과 우리 정부에 대해 강온 답변을 구사하는 이중전략으로 적전 분열 상황을 만들려는 것이죠.

북한이 원하는 구도는 정부와 입주기업들 간 대립하며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입니다. 북한이 근로자 철수 카드 등 압박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불안한 기업들은 정부를 닦달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버티다 보면 우리 정부가 결국엔 자신들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 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죠. 적으로 적을 제압하는 낮은 단계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당장 기업들 입장에선 공장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태를 방치하느니 북한의 요구사항(74달러로 최저임금 인상)이 크게 부담되지 않는 만큼 일단 들어주자는 기류가 적지 않게 퍼져 있는 분위기입니다. 실제 이날 입주기업 10여 곳은 기존 대로 임금을 지급하되, 인상 분은 추가 정산하겠다는 담보서에 서명하며 북한 손을 들어줬습니다. 북한의 기업 포섭 전략이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南 ‘어게인 2013’ 배수진은 쳤지만, 유연성도 발휘

반면 우리 상황은 좀 더 복잡합니다. 북한뿐 아니라 기업을 이중으로 협상 대상으로 상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잘못은 북한이 했는데 도리어 우리 정부가 쩔쩔 매는 답답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이번에 개성공단 갈등을 촉발시킨 북한의 일방적인 최저임금 인상 통보는 공단 운영의 대전제인 당국간 합의 원칙에 명백하게 위배되는 내용입니다. 이번에야 최저임금 5.18% 인상이었지만, 이걸 한번 들어주기 시작하면 앞으로는 북한이 하자는 대로 무조건 다 해줄 수 밖에 없게 되는 악순환의 빌미를 만들어 주는 꼴이죠. 이는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와 국제화를 위해서, 남과 북 양측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입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당국간 협의가 유일무이한 해결책이라는 원칙론을 강조하며 북한에게 대화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불안에 떠는 우리 기업들의 하소연을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인지라 나름 유연성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북한이 개성공단 공동위 차원의 당국 간 협의에 응하지 않자, 일단 최저임금 문제는 남측 관리위와 북측 총국 간 채널로 먼저 해결하되, 더 큰 쟁점인 노동규정 문제는 당국간 협의로 풀자는 투 트랙 전략을 제시했고, 지금까지 관리위와 총국 간 2차례 협의가 진행된 바 있습니다.

특히 우리 정부는 정부와 기업이 싸우는 형태로 비쳐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북한 책임론은 온데간데 없이, 남남 갈등이 부각될 경우 제일 이로운 사람은 북측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발생한 임금 지급 기한 연장 문제만 하더라도 정부와 기업 간 엇박자가 발생하자, 뒤늦게 나마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 총국에 임금 기한 연장을 요청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 차례 연장된 임금 지급 마감일이 또 다시 내일(24일)로 다가왔습니다. 남북한 양측 공히 개성공단 폐쇄 위기까지 불러왔던 2013년처럼 상황을 악화시킬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부부싸움으로 치면 속 마음으로는 서로 이혼은 없다면서도 겉으로는 이혼 서류 흔들어 대는 공수표만 날리며 기 싸움만 벌이는 느낌입니다.

따지고 보면 협상의 실마리는 의외로 간단하게 풀릴 수 있습니다. 북한은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실리를 원하고 우리 정부는 합의 존중이라는 명분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만 일단 얘기를 하려면 서로 마주 보고 앉아야겠죠, 밀당도 서로 너무 오래 하면 제 풀에 지치기 마련입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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