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무한도전’(‘무도’)의 10년을 이끈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두 사람이 떠오를 겁니다. 김태호 PD와 유재석입니다. 두 사람 중 ‘무도’ 10년을 온전히 지킨 이를 꼽으라면 바로 유재석입니다. 2005년 4월 23일 ‘무도’의 1기라고 할 수 있는, 당시 예능 프로그램 ‘토요일’ 속 코너 ‘무모한 도전’의 연출은 현재 MBC 예능1국 부국장인 권석 PD가 맡았습니다. 김 PD는 권 부국장이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방송사에 길이 남을 ‘예능 10년 역사’를 쓴 ‘무도’는 대단한 프로그램이 틀림없습니다. 시청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비웃기라도 하듯 슬럼프 없는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물론 시청률에서는 지난 2009년 이후 20%(닐슨 코리아)를 넘는 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2012년 1월 7일 방송됐던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한 ‘나름 가수다’와 2015년 1월 3일 방영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가 그나마 20%를 넘었습니다.)
방송 전문가들은 ‘무도’가 오랜 시간 버티는 원동력으로 “새로움”을 꼽습니다. 포맷도 없이, 고정 코너도 없이 10년을 이어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달리 말하면 유재석이 10년간 ‘무도’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영원한’ 멤버로 꼽히는 것도 매주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를 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은 여전히 ‘무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듯합니다. 지난 19일 서울 상암동 SBS 프리즘 타워에서는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동상이몽’)가 두 번째 녹화를 진행했습니다. 10대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가 서로의 고민을 풀어놓으며 해결을 모색해 보는 프로그램인 ‘동상이몽’은 지난달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한 번 방영된 이후 얼마 전 정규 편성이 확정됐습니다. 파일럿 프로그램은 5.1%의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평일 심야 시간대에 얻은 결과여서 SBS 내부에서는 “나쁘지 않다” “도전해 볼만하다”며 정규 편성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동상이몽’을 보면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아주 불안한 기시감입니다. 바로 KBS2 ‘나는 남자다’가 떠오릅니다. ‘나는 남자다’는 지난해 8월 8일부터 12월 19일까지 방영된 프로그램입니다. 유재석을 필두로 임원희 권오중 장동민 허경환이 남자를 위한 토크쇼를 표방하며 포문을 열었죠.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시청률은 4~5%대에 머물렀고, 화제도 유발하지 못한 채 시들어갔으니까요. 유재석을 활용하고도 화제를 만들지 못했으니 ‘유재석 위기론’도 일었습니다. 유재석은 이 프로그램으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듯 보였습니다. 방송가에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스타보다는 콘텐츠가 좋아야 시청자를 움직인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습니다. tvN의 드라마 ‘미생’, ‘응답하라’ 시리즈와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시리즈, JTBC ‘비정상회담’과 ‘냉장고를 부탁해’ 등이 그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자다’는 일반 토크쇼 방식으로 신선하지도, 그렇다고 개성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토크쇼로는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KBS는 유재석이란 카드만으로 승부수를 띄웠다가 전파 낭비만 한 꼴이 됐습니다. 값싼 제작비에 수다만 떠는, 종합편성채널(종편)의 토크쇼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오명까지 뒤집어 쓰면서 ‘나는 남자다’는 쓸쓸히 퇴장했습니다. 시즌제를 표방했지만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동상이몽’의 두 번째 녹화를 지켜 본 한 방송 관계자는 “‘나는 남자다’의 전철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합니다. 신동엽과 이영자, 컬투가 진행하는 KBS2 ‘안녕하세요’와 비슷한 포맷인데다가 (항간에는 SBS가 신동엽에게 섭외 요청을 했다가 ‘안녕하세요’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신동엽이 거절했다는 말도 떠돕니다), 이젠 진부한 장르가 돼버린 토크쇼 형식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BS는 ‘동상이몽’을 25일 오후 8시 45분에 편성을 잡았습니다. 이경규 강석우 등이 출연한 ‘아빠를 부탁해’가 일요일 저녁으로 시간대를 옮기면서 ‘동상이몽’이 들어간 겁니다. 결과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나는 남자다’처럼 20부작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유재석의 위기론이 또 다시 거론될지도 모릅니다.
KBS도 유재석 카드를 놓고 이래저래 고민입니다. 최근 KBS2 ‘해피투게더 3’의 메인 PD와 작가가 교체됐습니다. 새롭게 개편을 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포맷을 바꾸자니 제작비가 들어갈 것이고, 유재석를 버리자니 시청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KBS는 내부적으로도 “‘해피투게더’는 유재석을 버려야 개편을 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지난 2007년부터 ‘해피투게더 3’를 이끌어 오고 있는 유재석이기에 어느 정도 식상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지요.
‘해피투게더’의 책임 프로듀서(CP)인 김광수 PD가 ‘해피투게더 3’를 기획할 때부터 옆에서 취재하며 흥망성쇠를 지켜봐 왔습니다. 시즌 2격으로 학창시절 친구를 찾는 ‘해피투게더-프렌즈’는 “반갑다, 친구야”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김 PD로 연출자가 바뀌었습니다. 김 PD는 ‘해피투게더’의 명성에 걸맞은 포맷을 연구했습니다. ‘해피투게더 3’는 사우나 토크, 암기쇼, 퀴즈쇼 등을 거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사우나 토크가 메인 포맷으로 자리를 잡은 이후 한때는 20%가 넘는 시청률로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죠.
8년이 흐른 지금 ‘해피투게더 3’의 위상은 옛 명성에 비해 매우 초라합니다. 4~5%의 시청률로 그럭저럭 연명하는 모양새입니다.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나 JTBC ‘마녀사냥’ 등 강하고 자극적이며 독한 토크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해피투게더 3’는 더 이상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닙니다. 종편이나 케이블에서 이미 뜬 깜짝 스타나 리얼 예능에서 사생활이 공개돼 더 이상 궁금할 것도 없는 게스트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KBS가 개편을 시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해피투게더’는 광고가 거의 완판되는, KBS의 몇 안 되는 효자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바로 유재석 때문입니다. 유재석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광고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KBS가 유재석 카드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제 KBS도 과감한 도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재석 카드를 버리고 좀 더 도전적인 콘텐츠로 재정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종편이나 케이블이 새로운 포맷을 내놓고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방송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줄 때가 됐습니다. 유재석에 기대지만 말고 진정 콘텐츠로 승부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무도’가 전하는 교훈을 방송국 관계자들이 곱씹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