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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천고사설] 야스쿠니 신사의 전범들

입력
2015.04.2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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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11일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를 필두로 전범(戰犯)들이 체포되면서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단죄가 시작되었다. 도쿄(東京)재판이라고도 불렸던 극동국제군사재판(The International Military Tribunal for the Far East)은 단심제였다.

그러나 이 재판은 시작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일왕이 기소대상에서 제외된 것 외에도 그 범위가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5년 일본 패전까지 국한된 것이었다. 1905년부터 식민지배를 받은 한국과 1895년의 청일전쟁 이후 식민 지배를 받은 대만에 대한 범죄는 기소되지 않았고, 한국과 대만 총독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반면 유럽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는 폴란드 총독 한스 프랑크, 체코 총독 벨힐름 프리크, 동유럽 점령지 관리장관 알프레토 로젠베르크를 사형시켰다. 극동군사재판은 심지어 731부대의 이시이 시로우(石井四郞) 중장도 인간 마루타에 대한 실험 정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기소하지 않았다.

모두 28명이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는데 크게 두 부류였다. 하나는 군 출신들로서 관동군 출신들과 육군 중앙, 해군 중앙 출신들이다. 다른 하나는 민간 파시스트들로서 네 명의 전직 총리대신과 일왕의 비서실장격인 내대신(?大臣)과 외무대신, 독일ㆍ이탈리아 대사 등이었다. 이채로운 인물은 일본 우익의 사상적 지주역할을 하던 민간인 파시스트 오가와 슈메이(大川周明)였다. 전쟁광 도조 히데키는 체포 당일 자결하려다가 미수에 그쳐 ‘쇼 아니냐’는 힐난을 받았고, 극우 사상가 오가와 슈메이는 매독에 의한 정신장애가 인정되어 기소가 면제되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본 우익들의 정신세계를 잘 말해주는 사례들이다. 1948년 11월 12일 25명에게 판결이 내려졌는데, 교수형은 겨우 7명이었고, 종신형은 16명, 유기징역 2명, 기소면제 1명이었다.

교수형을 선고 받은 7명의 파시스트들의 면면을 보자. 진주만 습격의 책임자인 히데키와 만주 및 중국 침략을 주도한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와 도이하라 겐지(土肥原賢二) 두 육군대장, 영국령 공격을 주도한 버마방면군 사령관 기무라 헤타로(木村兵太?) 육군대장, 필리핀 민간인 학살과 포로 학대 혐의를 받은 14방면군 참모장 무토 아키라(武藤章) 등이었다. 중지나방면군(中支那方面軍) 사령관 마쓰이 이시네(松井石根)는 남경학살 혐의였고, 히로다 고기(廣田弘毅)는 나치 독일과 방공(防共)협정을 체결하고 중일전쟁을 미리 알고 지지한 혐의였다.

미국은 빈 라덴의 시신을 바다에 수장시킨 것처럼 1948년 12월 23일 교수형시킨 7명의 전범 유해를 화장해서 도쿄만에 뿌렸다. 그런데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 옥사한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의 변호인 산모지(三文字)가 유골 일부를 몰래 회수해서 흥선사(興禪寺)에 맡겼다가 고이소가 세운 아이치(愛知)현 흥아관음사(興亞觀音寺)에 비밀리에 안장시킴으로써 야스쿠니 신사 문제가 등장하는 단초가 되었다.

미국이 방침을 바꾸어 전범들을 다시 일본 정계에 복귀시키는 역코스 정책을 수립하자 이 7명의 파시스트의 유골은 1960년 8월 16일 아이치현 산가네산 정상에 옮겨져 ‘순국칠사묘(殉?七士廟)’로 부활했다. 일본에 우경화 바람이 불던 1978년 전범에서 순국자로 둔갑한 7명의 파시스트들과 종신형 선고 후 옥사한 7명의 파시스트들을 합쳐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했다. 일본은 현재 이들 14명을 ‘쇼와시대(昭和時代) 순난자(殉難者)’라고 부르는데, 순난자란 ‘공공을 위하다가 난을 당해 죽은 자’라는 뜻이다. 인류를 전쟁으로 몰고 갔으며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살인광들이 순국자이자 의사자(義死者)로 부활한 것이다. 만약 독일에서 나치 전범으로 사형당했거나 자살한 빌헬름 카이텔이나 하인리히 히믈러, 헤르만 괴링, 파울 괴벨스 같은 전범들의 유골을 수습해 ‘순국 지사묘’라고 명명하고 의사자라고 참배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올해도 일본의 초당파 의원연맹이라는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집단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독일 버전으로 바꾸면 ‘다함께 나치를 숭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나치 전범들의 묘소에 합동으로 참배한 것과 같다. 유럽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아시아에서는 왜 버젓이 자행될까? 전후 청산이 아직도 진행 중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주는 사례들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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