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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불혹의 토이랜드

입력
2015.04.2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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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모델이나 레고 같은 것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일단 만들기에 자신 없어서다. 어릴 적엔 다 만들어진 로봇이나 병정 같은 걸 갖고 놀기만 했지 ‘제작’은 늘 형의 몫이었다. 요즘도 가끔 형 집에 들르면 사단 병력 정도는 돼 보이는 병정과 탱크가 즐비하고, 다목적실은 숫제 ‘작업실’ 수준이다. 그래도 오래 전부터 나는 관심 밖이었다. 그러던 게 최근에 돌연 관심이 생겼다. 만들기에 소질이 많은 유전적 성향(아버지가 목수였다)이라 단정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갖고 노는 것에만 관심이 많은 거라 우기고 있으니까.

그리고 인형도 있다. 작년 이사 직후, 잠깐 동거했던 후배가 길에서 주워온 커다란 곰 인형이 지금 두 마리다. 옷도 입혀보고 이래저래 동작도 바꿔보고 사진도 찍는, 이른바 설정놀이에 재미가 들렸다. 그러면 이상하게 그 ‘설정’ 안으로 스며들게 되면서 묘한 감정이 되곤 한다. 피아노 앞에 곰을 앉히고는 “더 잘 칠 수 없어?”, 식탁 앞에 앉히고는 “깨작대지 말고 맛깔스럽게 먹어 봐”. 기타 등등. 고백하자면 올해 내 나이 꺾인 아흔, 모친이 목격이라도 한다면 웃으실지 우실지 잘 감이 안 온다. 그래도 그런 놀이에 이상하게 마음이 환기된다. 괴롭히지 말아야지 라는 착한 마음도 생긴다. 인형 얼굴에 내가 아는 ‘그’와 ‘그녀’도 보인다. 미친 건가. 아니겠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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